경기부양 '중앙은행 시대' 끝났다..."통화정책 불능"

2019-12-0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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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중앙은행 '충격과 공포' 끝"...추가 통화완화 선택지 난망

"중앙은행의 '충격과 공포' 시대는 끝났다."

블룸버그는 8일(현지시간)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으로 세계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시대가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중앙은행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한 터라 다음 위기 때 쓸 만한 선택지가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Fed) 본부. [사진=신화·연합뉴스]


◆금리인하 750번, 양적완화 12조 달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을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 이후 750번이 넘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주요국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심지어 마이너스(-) 영역까지 떨어졌다.

주요 중앙은행들은 초저금리 정책과 더불어 양적완화에도 나섰다. 기준금리를 더 낮추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국채 같은 자산을 매입해 돈을 푸는 식으로 장기금리 인하를 유도한 것이다.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로 푼 돈만 12조 달러가 넘는다.

세계 경제는 한동안 활력을 되찾는 듯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다시 급격한 둔화 조짐을 나타냈다. 경기부양에서 손을 떼거나 뗄 준비를 하고 있던 중앙은행들은 다시 통화완화 기조로 돌아서야 했다.

2015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기준금리를 9번이나 올린 연준은 올 들어 기준금리를 세 차례 낮췄다. 통화긴축을 예고했던 ECB는 지난 9월 3년 반 만에 추가 통화완화 조치를 단행했다. 기준금리 일종인 예금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에서 더 낮추고, 양적완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일본은행(BOJ)은 적극적인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하며 추가 부양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세계 경제를 글로벌 금융위기 수렁에서 건져내는 데 중앙은행들의 노력이 주효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올해 연준이 앞장서 통화완화 기조로 돌아선 덕분에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세계적인 경기둔화 우려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일본화 조짐 확산..."통화정책 불능"

그럼에도 세계 경제의 일본화 조짐이 우려를 낳고 있다. 경제 성장세와 물가상승세가 미약한 게 일본이 1990년대 초부터 겪은 장기불황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투자자들에게 '양적실패(quantitative failure)' 또는 '통화정책 불능(monetary policy impotence)'을 경계하라고 경고한 이유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 가운데 3분의 2가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화완화 조치가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BOJ 출신인 모마 가즈오 미즈호종합연구소 연구원은 "중앙은행들이 질질 끈 전쟁이 대체로 헛수고였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이 이제 현실을 직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 통화정책 효과는 분명히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시장에도 중앙은행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2009년만 해도 주요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급반등하는 등 경기회복 기대감이 컸지만, 유럽과 일본 국채 금리는 현재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미국과 중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각각 올해 예상치보다 3.5%포인트, 1.3%포인트 이상 낮은 상태다. 경기불안이 안전자산인 국채 투자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들의 통화완화 노력이 통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채권 트레이더들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국채(10년물) 금리가 10년 뒤 1%포인트도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최신 보고서에서 일부 중앙은행이 아직 경기부양을 위한 탄약을 갖고 있지만,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연준의 경우 기준금리를 5%포인트 낮추는 것과 맞먹는 경기부양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벼운 경기침체에는 맞설 수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극심한 침체에는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ECB, BOJ의 경기부양력은 연준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마이너스 금리' 등 역효과 우려도

통화부양에 따른 역효과도 문제다. 특히 마이너스 금리를 둘러싼 우려가 크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사인 핌코는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의 수익성을 압박해 대출이 줄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이는 시장 수익과 소비를 억제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리인하 압력에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 가능성을 배제한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필립 로우 호주 중앙은행 총재도 같은 입장이며, 스웨덴 중앙은행은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데도 5년간 유지한 마이너스 금리 기조에 종언을 고하려 한다고 전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급격한 성장둔화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통화부양을 자제하고 있다. 금융위기에 맞서 추진한 통화완화 공세로 자산시장 과열, 부채 폭증 같은 부작용을 겪은 탓이다. 이강 인민은행 총재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다음 침체 땐 中銀 대신 재무부 나서야"

중앙은행의 선택지가 바닥났다면, 정부가 대신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대규모 재정부양책을 발표하고, 오는 12일 총선을 치르는 영국 정치권에서 재정지출 확대 논의가 한창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재정적자 확대 등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넘어야 할 산이다.

톰 올릭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재정정책의 실패가 통화정책을 극단으로 내몰아 고갈 직전에 몰리게 했다"며 "다음 침체가 닥치면 해법을 제시해야 할 건 중앙은행이 아닌 재무부"라고 말했다.

한편 연준과 ECB, BOJ는 이번주와 다음주에 걸쳐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회의를 갖는다. 연준은 1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ECB와 BOJ는 각각 12일, 19일에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세 중앙은행 모두 기존 정책을 유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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