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이콧에 WTO 개점휴업 현실로?

2019-12-0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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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원들 보수까지 건들며 강공…WTO 사실상 기능 마비

日 수출규제로 통상갈등 빚는 한국에도 '악재'로 작용할 듯

미국이 상소기구 위원(재판관) 임명에 '보이콧'을 행사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가 창설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국이 이 입장을 고수할 경우, WTO는 오는 11일(현지시간)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고 블룸버그가 2일 전했다. 

상소기구는 WTO에 제소된 분쟁사건을 1차로 심리하고 판결하는 패널 사안에 대한 상소를 담당한다. 모두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미국이 위원 지명에 제동을 걸면서 공석이 하나 둘씩 늘어나, 현재는 최소 정족수인 3명만 남아 있다. 미국의 토머스 그레이엄 위원장, 인도의 우잘 싱 바티아 위원, 중국의 자오훙 위원이다.

그러나 이 중 그레이엄 위원과 바티아 위원의 임기가 오는 10일로 종료되면서 3명 가운데 자오 위원 1명만 남게 된다. 자오 위원의 임기는 내년 11월 30일까지다.

상소기구는 위원 3명이 한 건을 심리한다. 때문에 두 위원의 임기가 끝난 11일부터는 기구로서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다. 현재도 위원 수 부족으로 상소기구에 계류된 13건의 분쟁 가운데 2∼3건만 심리가 진행 중이다.

블룸버그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그레이엄 위원장이 최근 정부 관계자들에게 "임기가 끝난 직후에는 분쟁을 고려하지 않겠다"며 손을 떼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전통적으로 임기가 만료된 위원들은 계류 중인 분쟁 사안에 대해 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써 완전한 사임 표명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활용해 여러 혜택을 받아왔다며 WTO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그러면서 위원 선임 안건에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WTO 무력화를 시도해왔다. 

최근엔 WTO 상소 위원들이 과도하게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는 걸 문제 삼기도 했다. 위원들이 1년간 판정하는 항소 사건은 평균 5∼6건에 불과한데, 제네바에서 1년 내내 아파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위스 제네바 주재 미국대표부의 드니스 시어 대사는 지난달 22일 제네바 WTO 본부에서 열린 분쟁해결기구(DSB) 비공개회의에서 상소 위원들이 너무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상소 위원은 파트타임 직인데 한 사람당 30만 스위스프랑(약 3억6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보수로 받고 있다"며 "WTO 사무차장 연봉보다 훨씬 많은 액수"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셈법에 다른 회원국들은 반박했다. EU는 "보수에 대한 논의는 상소 기구가 기능을 발휘할 경우에만 할 수 있다"면서 현재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기구의 열악한 상황을 지적했다.  중국도 상소 위원이 규정대로 7명이 있으면(현재는 3명) 각 위원의 수입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지난 6월 기자 회견을 열고 각국의 협력을 촉구했다. 그러나 상소 위원 선임 보이콧에 이은 위원들의 보수에 대한 미국의 맹공에 WTO는 출범 24년 만에 '식물기구'로 전락할 위기를 눈앞에 두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과 더불어 각국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단편적인 개혁 요구 등이 빗발치면서 WTO가 존립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WTO는 최근 다시 거세진 보호주의와 전자상거래를 비롯한 교역 형태 변화, 기술 발전 등에 따른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문제는 각국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개혁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WTO 산파 역할을 한 미국이 등을 돌리면서 구심점도 잃은 상태다.

'세계 무역 대법원' 격인 WTO 기능이 중단될 경우, 전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친다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WTO가 지탱해 온 '다자간 무역' 체제가 동력을 잃고 내년부터는 분야별·지역별 무역협정 여러 개가 중첩되는 '다층 무역' 체제가 본격화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일본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로 한·일 경제 갈등으로 WTO의 존재가 절실한 우리 정부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W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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