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시아태평양방송개발기구(AIBD)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함께 연 아태지역 미디어교육 정책세미나 현장에서의 일이다.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미디어교육 사례 발제 후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베트남과 필리핀,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서 온 방송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가짜뉴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발제 내용에 거의 없었음에도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기네 나라가 겪고 있는 가짜뉴스의 폐해와 대응법에 대한 고민을 토해내며 한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가짜뉴스가 세계적 현상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웠다.
AIBD 세미나 다음날인 28일부터 이틀간 열린 ‘미디어·정보리터러시(MIL) 국제 콘퍼런스’의 분위기도 엇비슷했다.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MIL’ 주제로 캐나다와 인도·독일·한국의 사례가 발표되고 논의가 이어졌는데, 유독 현장을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었다. 허위정보와 팩트체크에 대한 분과세션이었다. 전문가 토크 후 워크숍에서는 일반시민이 ‘나도 팩트체커’가 되어 실제로 일본 방사능 피해 관련 가짜뉴스를 검증하는, 함께하는 팩트체크가 이루어졌다.
물론 ‘뛰는 팩트체커 위에 나는 가짜정보 생산자’ 간의 싸움이라는 비유에서 보듯이 팩트체커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짜뉴스는 무섭고 빠르게 퍼지고 있다. 단순히 텍스트나 말의 거짓을 넘어선 지 오래다. AI 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Deepfake)’까지 등장했다. 누구나 쉽게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뜨리면서 가짜뉴스는 뉴스와 정보의 세계를 무질서로 몰아넣고 온갖 장애와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한 사람 혹은 하나의 매체를 믿지 못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 모든 언론을 불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짜뉴스의 창궐 이면에는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지만, 거꾸로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가짜뉴스가 기성언론의 힘을 빼고 저질화를 초래하며 불신을 가속화하는 것도 틀림없다. 가짜뉴스와 어떻게 싸워야 할까? 효율을 높이려면 다른 매체 팩트체커와 플랫폼기업, 통계기관,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 시민 등 가짜뉴스와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 간 ‘협업’이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언론매체 간 협업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미국 듀크대와 영국의 풀팩트, 아르헨티나의 체케아도는 국경을 넘어 협력했다. 유럽연합(EU) 선거를 앞두고 유럽의 13개국 19개 미디어는 공동으로 왕성한 팩트체크 활동을 벌인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비영리단체 퍼스트드래프트(First Draft)의 주도로 33개 언론사에 소속된 100명 이상의 언론인이 모여 온라인에서 떠도는 루머와 각종 주장, 조작된 이미지나 동영상을 검증하는 크로스체크(CrossCheck) 프로젝트를 진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가 2017년 대선을 겨냥해 20개 이상의 미디어와 언론단체가 공동작업을 벌이고 검증 내용을 공유했다.
언론매체 간 협업은 더욱 왕성해져야 하고 한국에서도 일어나길 기대하지만 전문가인 언론인이 뉴스이용자인 시민과 함께하는 협업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지난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편집인포럼(WEF)에 소개된 ‘전문기자+독자 참여형’ 비영리 팩트체크 모델인 영국 위키트리뷴이 좋은 사례다. 위키트리뷴은 검증된 전문기자와 시민이 모인 플랫폼으로, 광고 없이 후원모델로 운영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기자가 인터뷰 전문이나 기사의 주요 사실이 기록된 1차 소스를 제공하면 독자들은 기사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일 수 있으며, 변경 사항은 내부 검증 뒤 반영된다.
결국 가짜뉴스에 맞서 싸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민 스스로 비판적 분석능력인 미디어리터러시 역량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교육 기관이 역량강화 교육을 하고 여기서 배출된 시민들이 언론인과 함께 실전을 해보는 팩트체크 커뮤니티를 꾸려보면 좋겠다. 이미 꽤 형성되어 있는 시사보도 마니아들은 바로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 스스로 저널리스트화하는 것, 즉 언론인과 적극적이고 지속적 관계를 맺는, 시민과 언론 간 협력 저널리즘의 상호 강화가 가짜뉴스 퇴치의 첩경 아닐까 싶다. 이런 생태계를 구축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텐데 벌써부터 마음이 종종걸음친다. 정치 특수에는 엄청난 양의 가짜뉴스가 투하된다는데, 바로 그 내년 4월이 눈앞에 와 있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