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의 시선] 일본 사람들은 곧잘 일본식 영어를 만들어 역수출하는 재주가 있다. 가라오케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짜(가라·から)라는 의미의 일본말에 오케스트라(관현악단)를 합성해 가라오케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이 말이 버젓이 영어사전에 karaoke로 등재돼 있다. 월급쟁이라는 뜻의 샐러리맨(salaryman)도 일본식 영어다.
욜드(yold)는 ‘young old’의 줄임말로 65~75세의 사람들을 호칭하는 일본식 영어다. ‘젊은 노인’이라는 의미의 이 신조어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필두로 전 세계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특집호 ‘2020년의 세계’에서 내년이 욜드 세대의 서곡이 울리는 해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도쿄 노인종합연구소가 30여년에 걸친 추적조사를 한 결과 1977년 70세였던 사람의 건강 상태가 30년 후 2007년 87세인 사람과 비슷했다. 영양, 의료, 사회안전 시설, 생활습관의 개선 등이 미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지금의 나이에 0.7을 곱한 것이 옛날 어른들의 나이와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는 70이면 대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의 70세는 옛날 50대 초반의 나이와 같다는 뜻이다. 선진 부국에서는 2019년 65~69세의 20% 이상이 직업을 갖고 있다. 이 숫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일을 하면 소득이 늘어날 뿐 아니라 인지능력과 근육의 퇴화 속도를 늦추어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독일연구소는 일을 하는 노인이 일을 하지 않는 노인보다 1년 반이나 인지능력 감퇴가 늦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욜드 세대는 양로원에 가서 소일하고 손자를 돌보는 보편적 이미지에 도전한다. 선진국에서는 항공산업과 골프산업 등에서 60대 이상의 고객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절약과 부의 승계를 중시하던 과거의 노년세대와 달리 욜드 세대는 자신을 위해 돈을 잘 쓰기 때문에 관광산업의 중요한 고객이다. 그런 면에서 욜드 세대는 자신들에게도 축복이지만 나라 경제와 사회에도 혜택을 준다.
노령화를 저출산과 묶어 국가적 재앙으로 다루는 시각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 기업 경영자들은 나이가 많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종업원들이 60도 되기 전에 명예퇴직 같은 방법으로 내보낼 궁리를 하지만, 독일 기업들의 분석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세대가 전체 근로자의 평균보다 오히려 약간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노령인구가 일을 하면 건강해지고 수입이 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의료보험과 연금 지출을 낮출 수 있다. 장수학자 박상철 교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노인이 많아지면 아픈 사람이 많아질 거라 걱정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 국립 노화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보면 고령사회에서 장애노인의 증가가 예상치보다 현저히 낮았다”고 말했다.
욜드 세대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발언권도 강해질 것이다. 기업들은 사회인식의 변화에 따라 성차별에는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면서도 연령 차별은 당연시한다. 직업훈련이나 파트타임 근무, 일자리 공유 같은 제도도 젊은 세대에만 제공한다.
아주경제신문사는 욜드 세대의 퇴직 기자들에게 글을 쓰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글쓰기 같은 지적인 노동에서는 빈티지가 오래된 사람의 글이 포도주처럼 숙성된 맛을 낼 수 있다. 신문 독자의 주요 구성층이 노년층이라는 측면에서 소비자 프렌들리(friendly) 고용이다.
비정규직의 파트타임 잡과 프리랜서가 큰 흐름을 형성하는 기그 이코노미(gig economy)는 욜드 세대에 유리한 환경이다. 욜드 세대는 자녀교육과 출가를 끝낸 사람들이어서 제2의 인생에서 고(高)임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욜드 세대가 증가함에 따라 정부 정책 결정에 대한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에 따른 젊은 근로자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도 법적 정년(현재 60세)이 점차 늘어나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건강에 비해 너무 이른 정년 때문에 은퇴가 램프(완만한 경사로)처럼 되지 않고 가파른 벼랑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임종석 전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김세연 의원(자유한국당)의 불출마 선언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과다대표된 586세대의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1980년대 학창시절에 형성된 특정세대의 경험이 국가정책에도 경직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675(60대, 70년대 학번, 50년대 출생)나 764(70대, 60년대 학번, 40년대 출생)의 퇴진으로까지 확장돼서는 안 될 것이다. 내년부터 65세가 되는 욜드 세대는 586에 밀려 정치적으로 과소대표된 세대다.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국회에는 30, 40대의 젊은 의원들도 많지만 60, 70대 의원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국론의 중심을 잡는다. 도널드 트럼프와 맞서며 당당하게 민주당을 이끄는 낸시 펠로시 여사는 올해 79세다. 욜드 세대는 투표를 통해 각 정당의 정책과 인적 구성이 욜드 세대에 프렌들리하냐, 않으냐를 따지게 될 것이다.
안셀름 그린 신부는 ‘황혼의 미학’이라는 저서에서 “오늘날 대중매체에서 벌어지는 토론을 보면 노인 인구 증가로 사회가 짊어져야 할 재정적·심리적 부담만 언급될 뿐 늙음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나이 듦’이라는 주제에 대해 긍정적 자세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욜드 세대의 빈티지, 건강함, 여유로움, 지혜로움을 경제적·국가적 성취로 연계시켜 나가야 기업과 나라에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