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의 군인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적을 악마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던 전쟁터의 크리스마스 날, 100m 떨어진 참호에서 대치하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는 존 패트릭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휴전'이라는 소설도 나왔다.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과 퇴진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진지전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조국 장관을 아웃시키라는 태극기 보수들은 청와대와 가까운 광화문에 진지를 구축했다. 검찰개혁과 조국 수호를 외치는 진보들은 윤석열 검찰을 비난하며 서초동에 길게 참호를 팠다.
마음 속 참호로 더 깊이 들어간다
'조국 법무'를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검찰이 찾아낸 11가지 혐의에 대해 "그 정도로 집요하게 털어서 안 걸릴 사람이 있나"며 검찰에 분노를 표시했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 정권에서 장관 후보가 고구마 줄기처럼 11가지 혐의 리스트를 달고 나왔을 때도 "그 정도로 집요하게 털어서 안 걸릴 사람이 있나"고 넘어갈 수 있는가. 상대에 따라 논리적 일관성을 뒤집는 것이 바로 진영논리다. 진보적 지식인이 부끄럼 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가 과연 진보적인지, 지식인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미디어도 정치적 양극화 증폭시켜
광화문 집회에 계속 나간다는 70대의 지식인은 점심 자리에서 필자에게 "문재인 대통령을 임기 전에 끌어내릴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찬성 의원이 재적 3분의2를 절대로 넘길 수 없을 테니 탄핵은 불가능하고 쿠데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농담으로 받았다. 맞장구를 쳐주면 분위기가 좋았겠지만 명색이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정치적 폭언에 동의해줄 수가 없었다.
요즘 미디어 이용자들은 자신의 신념과 편향을 확인하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의 시청을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언론이나 유튜버, 칼럼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가 생겨 불편하다. 그래서 자기 정치이념에 맞는 기사만 찾아 읽고 그런 기사가 많이 실린 신문을 구독하고, 그런 쪽으로 채널을 돌린다. 미디어는 자기 생존을 위해 이런 독자들의 취향에 맞춰 정치적 양극화를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세계적인 유행이지만 선진국의 수도에서 물리적인 진지전이 벌어진 일은 없다. 유튜버를 비롯한 SNS 논객들도 클릭 수를 높이고 후원자를 늘리기 위해 한쪽 극단에서 서서 자극적인 말을 쏟아낸다. 정치 현장에서 사실상 플레이어로 뛰면서 언론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선전선동과 언론활동이 구분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반대세력에 마음 연 진실 향한 소통
나는 대학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학생들에게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 90년대생은 '공정세대'라고 불린다. 그만큼 공정성에 대한 감수성이 강하다는 의미다. 나는 가르치는 현장에서 그것을 체험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과연 조국 가족은 공정했는가. 왜 촛불 진보들은 참호를 파놓고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가. 서초동의 촛불은 해산했다지만 그들의 마음은 참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 것 같다.
나는 광화문에 모인 태극기들에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지, 자유한국당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본질이 달라졌는지 묻고 싶다. '조국 사퇴 표창장'을 주면서 50만원 상품권을 돌린 자유한국당은 지금 희희낙락할 때인지, 정말 개념이 있는 정당인지 의심스럽다. 그런 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자기들끼리 '야당 복'이 있다는 말을 하는 판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부터, 우리 사회의 인지적 엘리트(cognitive elite)라는 사람들부터, 다른 쪽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실을 찾기 위한 소통을 해야 승자도 패자도 없이 분열만 키우는 이념 대결의 진지전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