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사태의 분수령이 될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했다. 홍콩 내 반중 정서가 표심으로 확인됐다는 평가다.
중국 측은 시위 사태 장기화가 친중파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서방 세계의 개입을 주장하는 등 비정상적인 선거였다는 점을 부각했다.
문제는 이번 홍콩의 선거 결과가 반중 성향인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재집권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대만 길들이기에 주력하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공산당 수뇌부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의회도 지각변동? 행정장관 직선제는 난망
25일 홍콩 언론들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를 지지해 온 범민주 진영이 452개 의석 중 약 77%를 독식하는 압승을 거뒀다.
범민주 진영이 과반 의석을 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 등 친중파 진영은 참패를 당했다.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71.2%까지 치솟을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8~35세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친중 성향의 정치인을 몰아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분석했다.
친중파에 대한 민심 이반이 확인된 만큼 자칫 동력을 잃을 뻔했던 반중 시위도 지속될 전망이다.
홍콩 이공대 고립 작전에 성공하며 기세를 올리던 홍콩 경찰과 캐리 람 행정부는 당분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할 것으로 보인다.
시위 사태가 장기화하고 홍콩 내 반중 정서가 계속 확산할 경우 내년 9월로 예정된 입법회(의회) 선거에서 친중파의 과반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중국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더라도 차기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반중파 인사가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행정장관 선출 권한을 가진 선거인단 1200명 중 여전히 절대 다수가 친중 성향인 탓이다. 가장 큰 몫을 가진 상공업계는 사업 안정성을 위해 중국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시위대가 요구하는 행정장관 직선제를 수용할 리도 만무하다. 홍콩의 혼란스러운 정국이 조기에 수습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中 "정상적 선거 아냐, 홍콩 포기 안 해"
홍콩 내 친중파의 몰락을 목도한 중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범민주 진영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실제 표차는 의석 수 격차보다 크지 않았다는 자위적인 해석도 나온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사평을 통해 송환법 반대 시위가 친중파 후보 및 지지자들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각종 충격이 겹쳤지만 (친중파가) 40% 가까운 표를 얻었다"며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는 "이번 선거의 정치 환경은 비정상적이었다"며 "특히 서방의 일부 세력은 지난 일주일간 홍콩 반대파의 승리를 돕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비판했다. 미국 상원의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홍콩 인권법)' 의결 등을 의식한 언급이다.
방일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취재진과 만나 "무슨 일이 있어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며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해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구시보도 "홍콩의 모든 선거는 중국 치하의 특별행정구 내 선거이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기본틀을 흔들 수 없다"며 "홍콩 정치의 작은 톱니바퀴가 중국에 끼워져 돌아가는 것은 역사적 흐름이며 국가는 영원히 홍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대만 대선 직격탄, 홍콩에 당근 내밀 듯
홍콩의 선거 결과는 반중 정서가 확산 중인 대만에서 내년 1월 실시될 대선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국양제에 부정적인 차이잉원 현 총통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 빈과일보는 지난 19일 민진당의 차이 총통이 42.3%의 지지율로 한궈위(韓國瑜) 국민당 후보(24%)를 큰 폭으로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다. 대선 때까지 이 격차가 유지되거나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일국양제 원칙을 앞세워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내심 대만 흡수 통일까지 도모하려던 중국의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홍콩의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후속 조치가 나올 공산이 크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 중 이미 수용한 '송환법 공식 철회'나 절대 수용 불가한 '행정장관 직선제' 외에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등은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극렬한 폭력 행위는 지속적으로 엄단하되 시위 진압의 강도를 다소 낮추는 방안도 거론된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홍콩의 상황을 감안해 민생·복지 측면의 당근책이 추가로 제시될 수 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홍콩의 민심 이반이 확인된 이상 군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 등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시 주석을 비롯한 수뇌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