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임원의 뜬금포 같은 질문이다. 지난해 매출만 4조원의 이커머스 공룡, 쿠팡의 옛 이름은 잊은 지 오래다. 답을 듣고 헛헛한 웃음마저 나왔다.
“쿠폰 팡팡. 기억나시죠?” 그랬다. 쿠팡은 2008년 미국 그루폰 설립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동구매형 소셜커머스 광풍이 불면서 탄생한 한국형 소셜커머스가 전신이다. 2010년 5월 국내 최초 소셜커머스 티몬(티켓몬스터)을 시작으로 위메프(위 메이크 프라이스), 쿠팡 등이 진용을 갖췄다. 이후 3~4년간 ‘반값 할인’을 앞세운 소설커머스의 전성기가 이어졌다.
이를 기점으로 쿠팡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소셜커머스가 아닌 ‘이커머스’라고 강조했다. 김범석 대표가 설립 초기부터 강조한 ‘한국의 아마존’에 성큼 다가선 것. 실제로 로켓배송 론칭 이듬해 쿠팡은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원) 규모의 유니콘 기업이 됐다.
이를 눈여겨본 글로벌 재무적 투자자(FI)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특히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5년 1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쿠팡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하지만 수익보다 ‘성장’에 방점을 찍으면서 쿠팡의 적자는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다 2017년 결국 자본잠식에 빠졌지만, 쿠팡은 손 회장 덕에 기사회생했다. 2018년 소프트뱅크가 중동 국부펀드 등의 자금을 조달해 운용하는 비전펀드로부터 20억 달러를 추가 투자 받은 것.
쿠팡은 이를 등에 업고 ‘로켓프레시’ ‘로켓와우클럽’ 등 새벽·당일 배송을 위한 물류 인프라 확충에 나섰고, 최근엔 음식배달 서비스 ‘쿠팡이츠’까지 시작했다.
문제는 이제 쿠팡의 총알이 거의 떨어져 간다는 점이다. 업계는 비전펀드로부터 받은 20억 달러가 내년이면 바닥날 것으로 본다. 이번에도 구세주는 손 회장일까. 그런데 소프트뱅크 사정이 별로다. 올 3분기 실적이 창사 14년 만에 처음 적자를 낸 것. 손 회장은 “너덜너덜해졌다. 태풍, 폭풍우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게다가 소프트뱅크가 최대 주주인 위워크마저 최근 상장 실패했다.
이 와중에 손 회장이 쿠팡에 3차 투자를 할지는 의문이다. 때문에 쿠팡은 지금 인수·합병이냐, 미국 나스닥 상장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또다시 자본잠식 우려가 큰 쿠팡이 당장 전략적 투자자(SI)를 찾아 인수·합병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쿠팡을 눈독 들이는 대기업은 많다. 전국 12개 지역에 24개의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다만 덩치만큼 불어난 적자는 부담이다. 지난해 매출 4조4228억원을 올린 동시에 영업적자도 무려 1조970억원에 달한다.
이에 쿠팡은 인수·합병보다는 나스낙 상장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지난 9월 3000여주를 추가 발행해 약 155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유상증자를 신호탄으로 쿠팡 미국 본사인 쿠팡LCC가 나스닥 상장에 속도를 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는 수순이 점쳐진다. 쿠팡이 지난달 차기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케빈 워시 전 미국 연준 이사를 영입한 점도 이런 계획에 힘을 싣는다. 하지만 쿠팡은 “성장을 위한 지속적 투자 기조를 이어갈 뿐”이라며 말을 아낀다.
“쿠팡의 요즘 메인 화면을 보세요. 아마존과 꼭 닮아 있어요.” 결국 쿠팡의 미래는 한국판 아마존이란다. 쿠팡의 옛 이름을 상기시켜준 그 임원의 말처럼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