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경제인 모여도 앞이 캄캄…WTO 끝에는 '아전인수' 불보듯

2019-11-19 09:01
  • 글자크기 설정

전경련・경단련, 양국 정부에 해결책 희망

WTO 제소해도 아전인수 이어지면 결과는 ‘담 쌓기’

전경련은 지난 15일 일본경단련과 도쿄 경단련회관에서 제28회 한일재계회의를 열어 얼어붙은 양국 경제관계의 정상화 방안과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데일리동방] 한・일 경제인이 머리를 맞댔지만 정치에 막힌 무역로가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일본 태도가 변하지 않는데다 세계무역기구(WTO) 판단도 아전인수식 해석이 예상돼 원만한 합의를 장담하기 어렵다.

◆경제인 ‘한 뜻’ 모아도 해법은 요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은 15일 도쿄에서 제28회 한일재계회의를 열고 민간 교류・협력 방안이 담긴 공동성명을 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날 도쿄 경단련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단련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에 공헌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양국에서의 이노베이션 추진, 성장분야에서의 육성과 협력, 경제연계 추진, 제3국 시장에서 한・일 기업간 협력 촉진, 청소년 교류 촉진 등을 논의했다고 성명에 적었다. 상생 과제로는 도쿄올림픽 기간 인적교류 확대와 셔틀항공 증편, 수소경제 표준제정, 5G 투자확대, 신재생 에너지분야 기술협력 등이 거론됐다. 다음 회의는 내년 서울에서 열린다.

한계는 뚜렷하다. 허 회장은 “한・일 간 무역 갈등을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면서도 "양국 간 쌓인 현안을 한・일 정부가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일 경제인이 ‘인식을 같이’ 해도 양국 지도자가 길을 트지 않으면 장사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역보복은 해를 넘길 모양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전범기업 신일본제철(現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이후 일본은 소재에서 부품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부터 끊었다. 올해 7월 반도체 핵심 소재(고순도 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 레지스트) 수출 규제와 8월 한국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제외 조치를 이어갔다. 이에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로 받아치고 있다.

미국이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의 입장 변화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1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6차 아세안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 때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상을 만나 1시간 동안 회담했다. 에스퍼 장관은 한・미・일 공동 목표에 협력하지 않는다면 중국과 북한에 이익이라는 취지로 지소미아 연장을 주문했다. 일본 측도 지소미아 연장을 직접 요구하지 않았지만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지역 평화에 위협이 된다고 발언했다. 정 장관은 3국 간 공동 가치와 안보 이익을 거론하며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오전 태국 ‘노보텔 방콕 임팩트’에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11분간 단독 환담했다. 문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아베 총리를 옆에 앉혔다. 지난달 이낙연 총리가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아베 총리에게 문 대통령 친서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모두 과거사 해결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뚜렷한 실마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1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63억6600만 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206억1400만 달러)과 비교해 약 20% 감소했다. 지난 9월 기준 우리나라의 대일본 수출 감소(-6.0%)보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 감소폭(-15.9%)이 더 컸다. 일본이 오히려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와 반도체 업황을 비롯한 복합적인 요인을 장기간 살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오전(현지시간)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아세안+3 정상회의 전에 만나 환담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3년 넘게 간다는 WTO 제소…'아전인수' 결말 불보듯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갈 길이 멀다. 한・일 양국은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2차 양자협의를 진행한다. 수석대표는 국장급으로 한국은 정해관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이 나선다. 일본에서는 구로다 준이치로 경제산업성 다자무역체제국장이 마주한다. 한국은 3대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해 9월 11일 일본을 WTO에 제소했다. 제소국과 피제소국이 합의하지 못하면 WTO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DSB)가 패널 설치와 구성, 심리, 보고서 제출 등을 이어간다. 당사국이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으면 상소로 이어진다. 기간은 통상 1~2년 걸리지만 당사국이 상소할 경우 3년 이상 장기화할 수 있다.

앞서 BSD는 일본산 공기압 밸브에 대한 한국의 덤핑방지관세 부과조치 정당성을 인정한 보고서를 9월 10일 채택했다. 일본 정부가 2016년 3월 15일 한국을 제소한 지 3년 반 만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자국이 실질적으로 이겼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관련 협의가 다시 필요해졌다. 양국이 기각 또는 인용 부분을 논의하고 조정하는 데는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그래도 협의가 안되면 WTO가 상대국에 대한 보복 신청을 검토한다. WTO를 통해 보복을 승인 받는 국가는 상대와 ‘담 쌓기’를 택한 것으로 간주된다.

일본은 미래 신기술에 쓰일 전략물자 무기화에 나선 한편 액체 불화수소 수출 허가로 국제 여론 관리에 나섰다. 요건을 갖추면 검토 후 수출을 허가하는 모습을 보여 분쟁 절차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WTO 제소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상 최혜국대우 의무(제1조)와 수량제한 금지 의무(11조), 무역 규칙의 일관적·공평·합리적 시행 의무(10조) 등을 제소 근거로 세우고 있다. 반면 일본이 21조의 ‘필수적 안보이익 보호 예외조치’를 내세우면 불리할 수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수출하고 싶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며 “그럼에도 일본이 안보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 하면 그 입장(논리)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화수소처럼 필요한 요건을 갖추면 수출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할 건 다 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므로 한국 측 입지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이 이긴다 해도 일본의 상소가 이어져 상소기구의 판단이 필요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이 WTO 무력화에 나서고 있어 원만한 마무리가 힘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정 교수는 “정원 7명에 최소 3명 이상이 판단할 수 있는 상소기구가 연말이면 1명만 남게 된다”며 “미국 대통령이 바뀌기를 바라는 시각도 있지만 WTO 무력화는 민주당인 오바마 대통령 시절부터 여야를 떠난 기조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