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법조팀은 수능을 하루 앞두고 법원이 판단했거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수능·입시 관련 재판들을 점검해봤다.
◆ '불수능' 논란... 1년 지났지만 재판은 여전히
2019학년도에는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는 '불수능' 논란이 일었다. 수능 시험 직후 한국교육평가원에는 역대 최다인 991건의 수능 이의제기가 쏟아졌고, 국어 '31번' 문항은 정답률 18.3%에 그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당시 수능문제를 출제한 평가원도 31번 문제의 난이도에 대해 사과를 했다.
핵심쟁점은 '교육과정의 기준'. 변별력을 강조하기 위해 고등교육 범위를 넘어선 소위 '킬러문항'이 출제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다.
특히 2019학년도 수능시험의 경우 수학 영역 60문항 중 12문항, 국어 영역 45문항 중 3문항이 교과 과정에서 배울 수 없거나 교과서에 아예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 사걱세의 주장이다.
'킬러문항'의 경우 사실상 최상위권 학생들도 제대로 풀기 위해선 15분 정도가 필요하다는 일선 교사들의 말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가중된 바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홍민정 상임변호사는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시험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고등교육 범위를) 넘어선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다"며 "아무리 어렵게 출제돼도 고교 교과과정 내에서 출제해야 하는 것"이라며 소송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재판은 2020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난 뒤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추상적인 개념인 교육과정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 공방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걱세 측은 연세대 논술과 관련해 지난해 행정법원이 내렸던 판단을 인용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수능과 논술은 취지가 달라 현재까지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 세계지리 '시점' 논란... 대법원 판단은 아직
2014학년도 수능 당시 8번 문항 오류로 피해를 본 수험생 94명은 국가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부산지법은 "문제 출제와 정답 결정 관련자들이 객관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문제 출제와 정답 결정 등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수험생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세계지리 문항은 '시점'이 문제가 됐다. 북미자유무역협정권(NAFTA)과 유럽 연합권(EU)의 총생산에 대한 보기를 고르는 문제로, 당시 교과서에는 유럽 연합의 생산이 크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교과서와는 달리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로 유럽 연합의 분위기가 크게 침체됐고, 2010년 이후에는 북미가 유럽연합을 추월했다. 시험문제가 출제될 당시에는 이 같은 설명이 틀린 것이다. 특히 문제 하단 오른쪽에는 연도가 2012년 기준으로 나와 있다.
논란이 커지자 평가원은 "교과서에 있는 대로 했으니 문제 없다"고 밝혔다. 또 일부 용어 표현이 미흡하거나 부족할 경우에도 정답을 선택하는 데 장애를 받지 않을 정도라면 이를 재량권의 일탈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2010두17267)을 인용하기도 했다.
사실상 교과서대로 풀지 않은 학생들의 책임이라는 취지다. 1심 재판부도 평가원의 손을 들었다.
2심 재판부는 반면 “원고(수험생)의 청구를 기각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국가 등이 원고에게 수능 출제 오류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류가 있는 문제를 냈다. 수험생과 언론 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문제 출제 과정과 이의처리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불법이 있다. 수능 문제 출제 등 업무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한 국가도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선 “원고 94명 가운데 42명은 출제 오류에 따라 지원 대학에 탈락했고, 뒤늦게 이 사건의 구제조치가 이뤄져 1년 뒤 해당 대학에 추가 합격했다. 42명의 경제적 손해배상 등이 인정돼 1인당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 당락에 피해를 본 적은 없지만 성적이 다시 산정된 나머지 52명에게 각 200만원씩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 같은 판단이 나오자 평가원은 상고했고, 결국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하지만 사건은 대법원에서 2년 5개월째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수능이 끝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책임자 없이 피해자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감독관 때문에 시험 망해"... 법원은 기각
2019학년도 수능을 본 A씨는 국가와 감독관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지만 1·2심 재판부는 모두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는 2교시 수학 영역 시험이 진행될 때 A씨가 있던 고사장을 담당한 관리 요원이었다.
시험 진행 중 A씨가 문제지의 이름과 수험번호를 샤프로 적은 것을 발견한 B씨는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기재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이후 수학 영역에서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B씨의 지시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어져 결국 자신이 지원했던 대학에 불합격했다며 국가와 B씨를 상대로 700만원을 청구했다.
A씨는 수능시험의 감독관과 수험생 유의사항 중 답안지가 아닌 '문제지'를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적으라는 규정은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A씨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문제지의 인적사항이 지워지거나 수정되면 향후 문제지의 내용을 확인하거나 응시자의 답안지와 비교하는 경우 응시자가 불이익을 감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적사항을 수정하도록 한 B씨의 행위가 강압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등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 '문제유출'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 이달 15일 2심 선고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이관용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현모 씨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현 씨의 업무방해 혐의 전부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두 학기 이상 은밀하게 이뤄진 범행으로 숙명여고의 업무가 방해된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며 대학 입시에 직결되는 중요한 절차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받는 고등학교 내부의 성적처리에 대해 다른 학교들도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모가 특정되지는 않고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존재한다"며 "두 딸이 정답을 미리 알고 이에 의존해 답안을 썼거나 최소한 참고한 사정이 인정되고, 그렇다면 이는 피고인을 통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현 씨가 정기고사 출제서류의 결재권자이고, 자신의 자리 바로 뒤 금고에 출제서류를 보관하는 데다 그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던 만큼 언제든 문제와 답안에 접근할 수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현 씨는 정기고사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주말 출근을 하거나 초과근무 기재를 하지 않은 채 일과 후에도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금고를 열어 답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쌍둥이 딸의 성적이 같은 시점에 중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급상승한 것을 두고 진정한 실력인지 의심스럽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딸들과 공모해 범행을 했다는 사정도 추인된다"고 했다. 현 씨의 두 딸은 이 사건으로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씨는 2017년 치러진 두 딸의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지난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5회에 걸친 교내 정기고사와 관련해 교무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알아낸 답안을 딸들에게 알려 학교의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쌍둥이 중 언니는 1학년 1학기에 전체 석차가 100등 밖이었다가 2학기에 5등, 2학년 1학기에 인문계 1등으로 올라섰고, 동생 역시 1학년 1학기 전체 50등 밖이었다가 2학기에 2등, 2학년 1학기에 자연계 1등이 됐다.
현 씨와 두 딸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오직 공부를 열심히 해 성적이 오른 것뿐"이라며 이런 혐의를 일체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