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생존전략…​사회적 가치가 SK 이익

2019-11-11 07:58
  • 글자크기 설정

국내외 안 가리고 ‘사회적 가치’ 설파

주주 이익과 사회적 가치 균형이 숙제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1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베이징포럼 2019' 개막식에서 기조연설 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데일리동방]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회적 가치(Social Value・SV)’를 전세계에 설파하고 있다. 사업 대상을 사회 문제 해결에서 찾는 선순환 경영이 100년 기업의 생존 전략이라는 판단이다.

◆사회문제 해결로 가심비 사로잡아야

최 회장은 지난 1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와 베이징대 등에서 열린 '베이징포럼 2019'에서 테러와 빈곤, 환경오염에 지정학적 불안 심화와 첨단 기술 발전 등이 양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SK의 해결 방식은 사회적 가치 창출이다. 그는 “SK가 지난해 280억달러의 세전이익을 얻는 동안 150억달러 규모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1달러를 버는 동안 사회적 가치 53센트를 창출한 셈이다. 사회적 가치 측정 과정이 완벽하지 않고 그 비율 역시 충분치 않지만 쉼없이 개선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SK의 사회적 가치는 사회문제 해결을 기업의 수익으로 만드는 선순환 경영이다. 손익계산서상 비용이 아닌 시장 창출과 성장 동력이라는 점에서 여론을 방어적으로 관리하는 사회공헌과 다르다.

사회적 가치 창출은 SK그룹의 헌법과 다름없는 ‘SK 경영철학 SKMS(SK Management System・선경 경영 관리 체계)’에 2016년 추가됐다. 사회 성과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 관리하는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DBL)으로 측정한다. 경제적 가치만을 측정 및 관리하는 싱글 바텀 라인(Single Bottom Line)과 달리 더블 바텀 라인은 사회적 가치를 두 번째 바텀 라인으로 포함한다. 이를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해 기업 역량과 인프라로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SK는 올해부터 CEO 핵심성과지표(KPI) 50%를 사회적 가치로 매긴다. 각 계열사는 회사와 사업 특성에 맞춰진 KPI를 활용한다. 연말 SK 인사가 주목되는 이유다.

사회적 가치는 SK뿐 아니라 세계 주요 기업 사이에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애플과 페이스북 등 200개 미국 기업 CEO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은 지난 8월 주주 이익 외에 사회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경영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지난달 18일 ‘2019년 CEO 세미나’ 폐막 연설에서 “자본주의 정점에 있는 국가에서, 기업 목표는 돈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가치라는 선언이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SK의 행복 경영이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행복 전략’을 자신감 있게 추진해 SK를 더욱 더 행복한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도 지난달 2일 설명회를 열고 주요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연초 투자기업 CEO에 보낸 서한을 소개했다. 그는 기업이 양극화와 환경 등 사회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목적이 분명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SK는 유니레버와 월마트, 엡손 등을 눈여겨봤다. 유니레버는 옷에 뿌려 세탁 효과를 내는 제품으로 물 사용을 줄이고, 월마트는 협력사들과 이산화탄소 1Gt(기가톤)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엡손은 재생지 만드는 세절기 개발에 성공했다. 생산・서비스 방식을 환경문제 해결과 연결지어 소비자의 가심비를 자극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위험사회’ 속 기업들의 생존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점차 늘어 사회가 만성적인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분업과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정부의 역할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 문자 보급과 교통수단 부족 같은 사회적 문제는 더딘 기술 발전을 기다리다 수동적으로 해결되곤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잠재적 소비자 또는 기업과 관련 없는 사람들도 유튜브로 정보 확산에 기여한다. 문제 해결이 사업이 되는 시대다.

SK는 소비에 가치가 부여되는 전지구적 경향에 주목했다. 기업의 생존 조건이 주주 이익 배당에서 가치 있는 기업의 이익 배당으로 바뀌었다는 판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부터 사흘간 제주 서귀포시 디아넥스 호텔에서 열린 '2019 CEO세미나'에서 첫날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사회적 가치가 ‘기업 돌연사’ 막는다

최태원 회장은 SK 사회적 가치를 3번째 단계로 끌어올렸다. SK의 첫 단계 사회적 책임(SCR)이던 ‘사회적 가치 1.0’은 인재 양성에 초점을 뒀다. 고(故) 최종현 회장 시절인 1970년대 MBC ‘장학퀴즈’ 후원과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 초점은 이윤 극대화에서 고객과 구성원, 주주와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 추구로 옮겨졌다. 최태원 회장은 취임 6년째인 2004년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 이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4년에는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문제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사회적 기업을 지목했다. 그는 회사가 16개 사회적 기업을 세우고 지원한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CSR)의 진화・발전된 모델을 고심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 성과를 화폐단위로 측정해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제도 ‘사회 성과 인센티브’를 제안했다. 사회적 기업들이 사회 성과를 만든 만큼 금전적 보상을 받으면 더 많은 사회 성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룹을 성공적으로 확장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최 회장이 사회에 기여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고심했다는 관측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기업 경영 환경 악화와 상생 강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하이닉스 인수합병(M&A) 성공 이후 자신감을 얻으면서 사회공헌도 일석이조로 삼는 과제를 스스로 찾으려던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회장 제안으로 2015년 출범한 사회 성과 인센티브는 13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까지 인센티브 148억원을 받았다. 올해는 188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성과 456억원을 창출한 데 대해 인센티브 87억원을 받았다. 지난 4년간 사회성과인센티브에 참여한 사회적 기업들이 창출한 사회성과는 1078억원으로 총 인센티브는 235억원에 달한다.

그 사이 SK 주요 계열사 정관의 ‘이윤 창출’은 2017년 ‘사회적 가치 창출’로 바뀌었다.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조성한 2010년대(2.0)를 벗어나 더블 바텀 라인(DBL)을 본격화한 3.0 시대 선언이었다.

최태원 회장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단순한 선의가 아니다. 이윤추구와 사회 문제를 따로 두는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기업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고민이 깔려있다.

최 회장은 2017년 8월 ‘제1회 이천포럼’ 강연에서 근육만 키우면 관절이 망가지듯 기업이 돈만 많이 벌려고 하면 관절의 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함께하는 사회혁신이 관절운동이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서든데스(sudden death・돌연사)를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핵심성과지표(KPI)에서 SV(사회적 가치) 비중을 50%로 늘린다고 선언했다. 1월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는 고용창출 효과도 지목했다. 그는 "유럽은 고용창출 전체의 6.5%를 사회적 경제에서 내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협동조합과 모든 걸 다 포함하더라도 1.4%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혁신성장을 첨단산업에서만 찾지 말고 정부와 기업이 모두 힘을 합쳐 사회적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최태원 회장이 9월 19일 저녁(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SK Night(SK의 밤)' 행사에서 사회적 가치를 통한 파트너십의 확장을 주제로 인사말 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계열사 특성 맞추고 경쟁사와 '손'

SK그룹은 6월 SK텔레콤·C&C·하이닉스·플래닛·브로드밴드·11번가·실트론 등의 API를 통합 제공하는 ‘SK 오픈 API 포털’을 공개했다. API는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줄임말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스타트업이 구상하는 서비스는 막대한 자본과 인력, 시간 확보가 걸림돌이다. SK는 각 계열사가 가진 지도와 인공지능(AI), 5G 초저지연 스트리밍 기술들을 대부분 무료 제공한다. 기초 단계 기술로 사업에 성공하고 서비스가 확장돼 복잡한 기술이 필요할 경우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식이다. 유망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갈증을 해소하고 SK도 5G 생태계 활성화로 장기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SK는 API를 통한 사회적 가치를 연내 100억원으로 내다본다.

계열사들도 사회적 가치 추구에 한창이다. SK텔레콤은 서울 6개구와 경기 화성시, 대전 서구 독거노인 2100여명에게 음성인식 AI 스피커 ‘누구(NUGU)’를 보급하고 있다. 지자체는 신규 일자리 인건비를 지원하고 사회적 기업 ‘행복한 에코폰’은 스피커 설치와 센터 운영, 데이터 분석과 보고를 한다. SK텔레콤은 센터구축과 기술, 데이터 분석 역량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4~5월 노인들이 스피커에 ‘심심해’ 같은 감성 대화를 일반인(4.1%)보다 많은 13.5% 비율로 시도한다는 통계를 얻었다. SK텔레콤은 이번 서비스로 독거 노인을 위한 법과 제도 논의를 끌어내 향후 AI 스피커시장에도 선순환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 해외 매출 비중은 97.9%를 기록했다. 같은 해 매출 상위 10대 기업 가운데 해외 매출 비중이 90%를 넘은 유일한 사례다. SK이노베이션은 50.1%였다. 소비자가 기업 이윤 추구 방식을 눈여겨 보는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협력사들과 에코 얼라이언스를 구축했다. 물 사용 공정을 바꿔 하루 폐수 7만9000t을 줄였다. 액수로는 연간 540억원을 절감했다.

E&P(석유개발) 사업을 하는 SK이노베이션은 9월 페루 88광구 지분 17.6%와 페루 56광구 지분 17.6% 일체를 플러스페트롤사(社)에 1조25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3년간 제품 시황에 따라 조건부로 추가금을 받게 된다. 저유가 기조에 따라 광구 사업 매력이 감소한 탓도 있지만 2차전지・소재 투자금도 확보하게 됐다.

깜짝 발표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도 한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지난달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사업협력을 위해 상호 3000억원 규모 주식을 교환하는 식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아이폰 등장 이후 통신사의 메시지 독점을 깨는 데 기여한 카카오는 콘텐츠 강화와 5G 시대 선도를 노린 SK텔레콤과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계열사 API 공개로 사회적 가치 창출에 나선 SK는 카카오와의 협력으로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SK 사회적 가치는 ▲경제간접 기여성과(기업활동을 통한 국내 경제 간접 기여) 7734억원 ▲비즈니스 사회성과(제품의 개발·생산, 판매를 통한 가치) 550억원 ▲사회공헌 사회성과 74억원 규모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번개 행복 토크를 열고 구성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SK 제공]

◆시장경제 현실과 이상 조율 ‘어려운 과제’

SK의 사회적 가치는 국내 기업의 공감대도 얻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8월 중순 최정후 포스코 회장과 만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했다. 두 회사는 사회적 가치 측정을 포함해 작은 단위로 실천할 수 있는 협력 방안을 정리하고 있다.

SK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등급은 2017~2018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A+를 받았다. 지난해 ESG 우수기업 대상에도 SK가 이름을 올렸다. 사회적 가치를 이윤과 같은 뿌리에서 거두려는 경영 철학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사회 문제 해결로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만큼 단기적인 주주 이익 실현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윤창현 교수는 “SK의 움직임은 ESG 투자의 한 형태”라며 “다만 사회적 가치(S) 계량화를 너무 강조하다 순익이 줄면 주주가 불만을 드러낼 수 있어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와 기업 이익을 함께 창출하는 중요한 사례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경영자들이 더 높은 목표로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경제적 가치로 이어진다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줘야 SK만의 사례로 남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