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하 한샘 회장(만 70세·대표이사)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1994년 전무(대표이사)에 오른 지 25년 만으로, 국내 500대 기업 중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한샘은 31일자로 최 회장이 스스로 회장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다음달 1일 사내 월례조회를 통해 직원들에게 회장직 용퇴 입장을 공식화한다.
최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중공업을 거쳐 1979년 한샘에 입사했다. 1994년 45세의 나이로 대표이사를 맡은 후, 25년간 줄곧 한샘을 진두지휘해왔다.
최 회장의 지휘 아래 한샘은 올해 2분기까지 7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매출 약 15배, 영업이익 약 14배, 시가총액은 약 50배(2002년 상장 이후 2019년 10월 29일 종가 기준)로 뛰어오르며 매출 2조의 국내 1위 종합 인테리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 회장은 “한샘은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파는 회사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한샘 주방 사업에 뛰어들었고, 입사 후 7년 만인 1986년 부엌가구 부문을 업계 1위로 올려놨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이 붐을 이루던 당시 현대식 부엌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최 회장은 규격화된 부엌 설계를 토대로 한 ‘주방 가구’의 대중화를 선도해 나갔다.
한샘의 주방 사업은 입식 부엌을 전국 모든 가정에 보급하며 부엌을 ‘가사 노동’이 아닌 ‘가족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데 일조했다.
시대를 앞선 선구적인 경영 시스템 도입도 최 회장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PC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1989년, 최 회장은 건축과 중장비 설계 등 일부 분야에서만 사용하던 캐드(CAD) 프로그램을 부엌가구 설계에 도입했다. 수십 년간 ‘모눈 종이’에 연필로 설계도를 그리던 관행을 깨고 공정 시간과 생산력, 오차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종합 인테리어 부문도 1997년 사업개시 이후 5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최 회장은 ‘공간을 판매한다’는 사업전략을 구상, 리하우스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1994년 최 회장은 CEO에 오른 후부터 리하우스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집 전체를 한 번에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리모델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택 리모델링 시장에 자동차 공정의 일관 생산 시스템을 적용, 주거 공간 창출의 개념을 보다 구체화했다. 상담에서 설계, 시공, 애프터서비스까지의 전 과정을 일원화했고, 부엌과 욕실, 창호, 마루, 도어 등을 한 데 묶어 규격화된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냈다.
공간의 상품화 전략은 가구, 소품, 패브릭 등 주거공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샘’의 이름으로 상품화하여 판매하겠다는 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한샘은 이를 위해 연 매출액의 4~5%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경영전략인 디자인에 투자하고 있다.
위기 때는 특유의 돌파력을 발휘했다. 그는 IMF외환위기나 세계금융위기 같은 어려운 시기에 거꾸로 신규사업을 확대하고 영업과 시공 사원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2014년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국내 상륙 당시 ‘한국 브랜드는 다 죽을 것’이란 우려에도 최 회장은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비즈니스로 차별화하자”며 앞장섰다. 그 결과, 한샘은 이케아 진출 이후에도 오히려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났다.
최 회장은 “한샘은 가구를 파는 기업이 아니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사람이 하는 서비스업”이라는 지론 속에 직원에 대한 투자와 애정도 아끼지 않았다. 소탈한 리더십과 진심 어린 애정 속에 직원들과 거리낌 없는 소통을 즐겨, 공장장 시절에는 직접 야학을 열어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최 회장은 은퇴 후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한샘은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은 회사다. 시행착오를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후배 양성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다.
한편 한샘은 최 회장의 후임자로 강승수 부회장(만 54세)을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재무를 책임졌던 이영식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해 전략기획실을 총괄 지휘해나갈 계획이다.
한샘은 31일자로 최 회장이 스스로 회장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다음달 1일 사내 월례조회를 통해 직원들에게 회장직 용퇴 입장을 공식화한다.
최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중공업을 거쳐 1979년 한샘에 입사했다. 1994년 45세의 나이로 대표이사를 맡은 후, 25년간 줄곧 한샘을 진두지휘해왔다.
최 회장의 지휘 아래 한샘은 올해 2분기까지 7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매출 약 15배, 영업이익 약 14배, 시가총액은 약 50배(2002년 상장 이후 2019년 10월 29일 종가 기준)로 뛰어오르며 매출 2조의 국내 1위 종합 인테리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샘의 주방 사업은 입식 부엌을 전국 모든 가정에 보급하며 부엌을 ‘가사 노동’이 아닌 ‘가족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데 일조했다.
종합 인테리어 부문도 1997년 사업개시 이후 5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최 회장은 ‘공간을 판매한다’는 사업전략을 구상, 리하우스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1994년 최 회장은 CEO에 오른 후부터 리하우스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집 전체를 한 번에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리모델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택 리모델링 시장에 자동차 공정의 일관 생산 시스템을 적용, 주거 공간 창출의 개념을 보다 구체화했다. 상담에서 설계, 시공, 애프터서비스까지의 전 과정을 일원화했고, 부엌과 욕실, 창호, 마루, 도어 등을 한 데 묶어 규격화된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냈다.
공간의 상품화 전략은 가구, 소품, 패브릭 등 주거공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샘’의 이름으로 상품화하여 판매하겠다는 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한샘은 이를 위해 연 매출액의 4~5%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경영전략인 디자인에 투자하고 있다.
위기 때는 특유의 돌파력을 발휘했다. 그는 IMF외환위기나 세계금융위기 같은 어려운 시기에 거꾸로 신규사업을 확대하고 영업과 시공 사원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2014년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국내 상륙 당시 ‘한국 브랜드는 다 죽을 것’이란 우려에도 최 회장은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비즈니스로 차별화하자”며 앞장섰다. 그 결과, 한샘은 이케아 진출 이후에도 오히려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났다.
최 회장은 “한샘은 가구를 파는 기업이 아니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사람이 하는 서비스업”이라는 지론 속에 직원에 대한 투자와 애정도 아끼지 않았다. 소탈한 리더십과 진심 어린 애정 속에 직원들과 거리낌 없는 소통을 즐겨, 공장장 시절에는 직접 야학을 열어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최 회장은 은퇴 후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한샘은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은 회사다. 시행착오를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후배 양성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다.
한편 한샘은 최 회장의 후임자로 강승수 부회장(만 54세)을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재무를 책임졌던 이영식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해 전략기획실을 총괄 지휘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