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도 놀랄 일들이 많아서 웬만한 일엔 표정도 별로 안 변하는 경우가 많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은 그 위험수위 때문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말 같지만, 그 '보호받을 자격'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 권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반문케 하는 무서운 말이다. 박시장은 "징벌적 배상제도라는 게 있다. 왜곡해서 기사 쓰면 완전히 패가망신하는 그런 제도가 도입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고, "(징벌적 배상제도는) 게임 규칙을 위반하면 딱 핀셋으로 잡아서 운동장 밖으로 던져버린다"고도 했다.
'왜곡해서 쓰면'이나 '게임 규칙을 위반하면'이란 말 또한,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의 '자의적 판단'이 낳을 언론탄압을 상상케 한다. 핀셋으로 벌레를 잡아내듯 밖으로 던져버린다는 표현은, 그가 현재의 일부 언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개심과 그 기분에 따른 응징의 양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박시장이 주장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가 끼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물리도록 하는 제도로, 언론의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보도를 막는 수단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국내 상황에서는 언론의 정상적 기능을 오히려 억압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만만찮았다. 이런 주장이 다시 나오는 것은, 현재의 언론 행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보다 해법이 더 과도하고 과격하여 다른 치명적인 문제를 유발시킬 리스크가 더 크다.
사적인 술자리에서라면 듣고 흘릴 수 있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고위의 공직을 맡은 분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한 것인지라, 예사롭지 않다. 그렇게까지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권력 주위의 '공기'가 심상찮다는 얘기다. 박시장의 '충정'어린 사견이기를 바라지만, 혹여 조국 사태로 낭패를 겪은 정부가 적폐청산의 다른 카드로 일부 언론을 손 보기로 작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돋운다. '보호받을 자격'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언급만으로도, 상당 수준의 으름짱이 아닌가.
얼마전 이준웅 교수(서울대)는 이런 말을 했다. "언론은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다."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기에, 언론은 자유가 생명이며 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권력은 스스로를 향하는 비판을 충실하게 수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것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바꾸려는 권력들이 역사상 얼마나 많았던가. 언론의 뒤를 파서 입을 막겠다는 권력의 하수인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그 권력들이 어떻게 되었던가. 언론의 보호받을 자격을 따지는 권력은 언론의 비판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용비어천가만 부르는 시대는 조선시대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