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WTO 개도국 지위 포기…"쌀, 국내 농업 최대한 보호"

2019-10-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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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결정 늦어질수록 명분·협상력 떨어져"

공익형 직불제·농업 지원책 강화…농업계 반발 거세질 듯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우리 농업의 민감 분야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협상할 권리로 보유·행사한다는 전제하에 미래의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현시점에서 개도국 특혜에 관한 결정을 미룬다고 해도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에게 개도국 혜택을 인정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결정이 늦어질수록 대외적 명분과 협상력 모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미래에 새로운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이미 확보한 개도국 특혜는 변동 없이 유지할 수 있다"며 "미래의 협상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WTO에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받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WTO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은 이들 국가에 개도국 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홍 부총리는 "미래의 WTO 농업 협상에서 쌀 등 국내 농업의 민감 분야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국내 농업에 영향이 발생할 경우 피해 보전 대책을 반드시 마련하겠다"면서 "아울러 우리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어 "공익형 직불제를 조속히 도입하고, 국내 농산물의 수요 기반을 넓히고 수급 조절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익형 직불제는 정부가 작물·가격 상관없이 면적당 일정액을 농가에 지급하는 제도다. 공익형 직불금은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관련 예산을 올해 1조4000억원에서 내년 2조2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공식화함에 따라 농업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 출범 당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은 이후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농업 분야에서만 예외적으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았다.

앞서 농민의 길과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32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전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만약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면 미국은 당연히 미국산 농산물 추가 개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며 "개도국 지위는 미국이 준 것이 아니라 WTO 협정에 따른 것이다. 현시점에 한국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 또한 통상 관료들의 어처구니없는 인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WTO 개도국 특혜 관련 정부 입장 및 대응 방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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