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조국 사태가 남긴 특권과 불공정 사회

2019-10-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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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대한민국 남성에게 병역은 의무다. 신체적 결함이나 합당한 배제 사유가 있을 경우만 예외다. 그러니 천형(天刑)이나 다름없다. 다소 과장되지만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군 복무를 피하는 이들이 흔하다. 특이하게도 특정한 계층에 고의적인 병역 기피가 몰려 있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상당하거나, 명예가 높은 이들이다. '내 자식만은'이란 특권 의식에 기대고 있다. 군 복무가 공정과 반칙을 가르는 척도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왜 병역이 공정과 정의의 문제인지는 간단하다.
첫째, 누구도 군 복무를 원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원입대 또한 미화된 일화일 뿐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신성한 국방의무”라는 수사는 이럴 때 동원된다. 국가는 남성이라는 본성을 부채질하고, 가족들은 감성적으로 순응한다. 이미 군복무를 이행했거나 예비 자원들 또한 그런 논리에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국가는 군복무가 헛되지 않다는 환상을 심어주어야 징병이 용이하다. 그래야 거저 데려다 쓰는 미안함도 덜 수 있다. 만일, 면제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병역 이행은 공정과 정의의 문제다.

둘째, 군 복무는 아무리 포장해도 비생산적 시간임에 분명하다. 구경꾼들은 “군에 가면 사람 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사자 입장에선 정지된 시간이다. 왜 그런가. 모든 신체 자유를 반납한 채 속박되기 때문이다. 밥 먹는 것은 물론이고 생리 현상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게 훈련소, 신병 생활이다. 그저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화석화될 수밖에 없다. 군 입대를 피한 이들은 그동안 자기개발에 투자한다. 특권을 이용한 반칙이다. 최근 둘째아이를 군에 보내면서 든 생각이다.

조국 사태 본질 또한 공정과 정의의 문제였다. 진중권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조준했다. 그는 “진영이나 이념이 아닌 공정과 정의의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과정이 공정했느냐를 물었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 입장에서 공정을 바라는 이치다. 잣대가 공정해야 설득력을 얻는다. 그것은 진영논리도 편 가르기도 아니다. 이처럼 단순한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는 두 달이 넘도록 에너지를 허비했다. 조국을 정점에 둔 진영싸움이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이제 조국 사태는 일단락됐다. 냉정하게 성찰하는 일만 남았다.

15일 교육위원회 광주 국정감사에서도 불공정이 문제가 됐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에서 전남대병원에서 가장 많은 채용비리가 있었다”고 공개했다. 대학병원 사무국장 A씨 사례다. 박 의원은 “A씨 아들과 조카, 그리고 아들 여자 친구까지 채용하면서 특권과 반칙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채용된 10명 가운데 두 사람만 실무 경력이 일천했다. 경력이 풍부한 다른 합격자들과 달리 ‘실습 1개월’이 전부다. 그런데도 A씨 아들은 1등으로 합격했고, 올해 초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더구나 A씨는 채용 당시 시험관리위원으로 참여했다. 조카 채용 때도 서류·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박 의원은 “직권남용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경징계를 요구해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니 청년들이 분노한다”고 날을 세웠다. 박 의원은 “‘아빠찬스’와 ‘삼촌찬스’를 넘어선 ‘남친 아빠찬스’다”고 질타했다. 그런데도 교육부 징계는 납득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A사무국장에 대해 경징계를 요구, 경고 처분에 그쳤다. 이날 교육위원회는 A씨에 대해 감사원 감사청구를 하기로 했다.

A씨 사례는 우리사회 곳곳에 스민 특권과 반칙의 단면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잡고 부러울 것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와 배경을 이용해 반칙을 일삼는다. 우리가 미국 자본주의에서 희망을 엿보는 것은 건강한 지도층 때문이다. 빌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마이클 블룸버그, 척 피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부자를 욕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인들은 이들을 존경한다. 부를 명예롭게 행사하고, 특권을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한 부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물론이고 투기꾼으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조차 그렇다. 소로스는 지난 33년 동안 8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또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권력 눈치를 보지 않은 소신이다. 나아가 진보성향 재벌 100명과 ‘민주주의 동맹’을 설립해 사회변화에 나섰다. 앞서 철강왕 카네기는 “가족을 먹여살리는 데 필요한 재산 이상은 사회공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평생을 자선사업에 전념했다. 미국 1600곳, 세계 2500곳에 달하는 카네기 도서관과 음악홀은 그런 산물이다.

미국 상류층은 건국 초기부터 특권보다는 봉사와 헌신을 우선 추구했다.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메디슨은 건국의 아버지다. 이들은 1~4대 대통령을 지내면서 민주적 가치와 청렴, 신뢰를 바탕에 두고 초석을 다졌다. 두 번째 임기를 마친 워싱턴에게는 연임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갔다. 또 제퍼슨은 “출신과 빈부를 막론하고 재능과 덕목을 갖춘 인재들이 모든 계층에서 배출되어야 한다”며 교육제도 개선에 주력했다. 우리사회 기득권층에게 성직자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단지, 특권과 반칙만이라도 하지 않는 건강한 시민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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