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증시를 기초 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ELS) 투자자들이 원금손실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문제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격화되면서 홍콩H지수가 하락하고 있어서다. 홍콩 사태가 국제 금융시장의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일이 큰 파문을 불러오는 것)이 되면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홍콩H지수 ELS 한 달 동안 16% 감소
홍콩H지수는 홍콩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중 시가총액·거래량 등이 많은 40개 기업을 꼽아 구성됐으며, 국내 ELS 상품의 기초자산으로 활용된다. 올해 가장 많이 발행됐던 4월(7조5344억원)과 비교하면 61% 감소한 수준이다.
홍콩 시위 장기화로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증권사들이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상품을 줄인 것이다. KB증권이 내놓은 ‘9월 ELS 발행 규모 추이’ 자료를 보면 홍콩 H지수의 점유율은 56.35%로 한 달 전보다도 12.7% 포인트 줄었다.
이 기간 동안 유로스톡 50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S&P500) 지수를 활용한 ELS는 각각 85.9%, 80.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중호 KB증권 연구원은 "시위 여파로 홍콩H지수 회피 현상이 명확하게 나타났다"며 "대체재 성격인 유로스톡 50지수의 점유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홍콩H지수 약세에 ELS 원금손실 가능성
홍콩H지수는 전일 종가(10169.33) 기준 한 달 동안 약 2% 빠졌다. 기간을 넓혀 올해 4월 17일 기록한 최고점(11848.98)과 비교하면 현재까지 14%가량 떨어진 상태다. 지난 9월 초에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도입을 철회하겠다고 밝히면서 지수가 소폭 올랐다.
하지만 시위가 반(反)중국 시위로 확장되면서 지수는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홍콩H지수가 추가로 하락할 경우 ELS 투자자들이 원금손실구간(녹인)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까지 상환되지 못한 국내 ELS는 39조원어치다.
국내 증권사는 ELS 상품을 만기 평가일에 45~55% 하락할 때 원금을 잃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손실가능성이 높은 상품은 2018년 1·2·3월에 발행된 ELS다. 지난해 1월, 2월 3월 내내 홍콩H지수는 1만1000포인트를 웃돌았다. 지난해 1월 26일에는 1만3723.96포인트로 장을 마감해 3년래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일 대비 25% 높은 수치다.
세이브로를 보면 2018년 1~3월 발행된 ELS는 총 15조6540억원어치다. 1월과 2월엔 각각 4조8250억원, 4조2389억원이 발행됐다. 3월엔 6조5910억원어치가 팔렸다.
최현재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18년 지수가 높아지면서 이전에 발행된 ELS는 모두 상환됐다”며 “만약 지수가 7500포인트까지 떨어진다면 지난해 초 발행한 ELS는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예상치 못한 장기전에 블랙스완 우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장기전"이라고 밝혔다. 9월 이후 사라질 이슈라고 생각했지만 폭력 시위로 변질되면서 '블랙스완' 가능성도 제기될 정도다. 마스크와 복면 착용을 금지한 긴급정황규제조례(긴급법)가 발동된 후 시위의 수위는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캐리 람 장관은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상황이 매우 악화될 경우 어떤 옵션도 배제돼선 안 된다"고 밝혔고,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개입할 거란 우려도 커졌다. 다만 중국 정부가 직접 무력 진압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홍콩 선전시에 인민해방군이 배치된 이후 홍콩 증시는 하루 만에 21%가량 떨어졌다. 그리고 이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1.4%에서 4.2%로 크게 하락했다. 홍콩증시 하락은 곧 중국경제 둔화를 의미하므로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김형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홍콩 금융은 기업공개(IPO)를 비롯해 후강퉁, 선강퉁 등을 통한 중국 자본시장의 연결 통로”라며 “홍콩거래소 상장 기업의 63%는 중국 대륙기업으로, 홍콩 금융시장 타격은 곧 중국 본토기업의 주가와 자금 조달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