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신령열전]스코틀랜드의 집안일 요정 브라우니

2019-09-2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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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청소를 하는 브라우니, 아서 라크맨 작. [사진=구글 이미지]

브라우니(Brownie)는 영국 북부와 스코틀랜드의 민가에 살면서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꼬마 요정이다. 키가 1m쯤 되는 어린아이 크기로, 벙어리 장갑처럼 손가락과 발가락은 모두 붙어 있고 코는 형체가 없이 핀으로 뚫어놓은 것처럼 콧구멍만 있다. 브라우니라는 이름은 갈색 피부에 온몸에 곱슬곱슬한 갈색 털이 돋아나 있고 낡은 갈색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작은 크기로 네모지게 자른 초콜릿 케이크의 이름도 브라우니다.
인간에 친숙한 존재이지만 브라우니는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정직하고 명랑한 사람들에게만 가끔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어른이 오면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브라우니는 물방앗간이나 농장, 헛간 등에 살면서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에 나타나 집안일을 도와준다. 낮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집주인이 청소나 세탁을 미처 끝내지 못했으면 밤중에 나타나 깨끗이 치워준다고 한다. 크림을 휘저어 버터를 만들고 접시를 닦아 놓거나 일손이 많이 필요한 추수철에는 밤중에 농장의 동물을 돌봐주거나 건초를 베고 잔디를 깎아 놓기도 한다. 브라우니는 또 벌떼를 모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벌떼가 습격했을 때 ‘브라우니’를 외쳐 부르면 벌떼를 다른 곳으로 쫓아주거나 떼지어 붕붕거리는 벌떼들을 잠잠하게 만들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지방의 브라우니는 술 만드는 일을 돕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브라우니의 모습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어도 밤새 청소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느라 브라우니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를 이따금 듣는다고 한다.
브라우니는 크림이나 빵·우유 등을 좋아해 집안일을 도와준 대가로 우유나 꿀 바른 빵·과자를 얻어먹는데, 우유 한 컵과 빵 한 조각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농촌에서는 잠을 자러 침실로 가기 전에 거실 난롯가나 부엌에 브라우니가 먹을 것을 조금 남겨 놓는 풍습이 있다. 만일 사례를 하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며 집안을 도로 엉망으로 만들거나, 밤중에 자는 사람을 꼬집기도 한다.
반대로 사람들이 지나친 보답을 하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껴 곧 떠난다고 한다. 먹을 것 말고 옷이나 신발 같은 선물을 주면 옷을 입고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브라우니는 인간에게 호의적이어서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절대로 공격하는 법이 없다. 때때로 마법도 사용하지만 자기 몸을 보호하는 정도다. 브라우니는 아이들과 놀면서 들국화로 화관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암소와 암탉에게 길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브라우니가 있는 집에는 추악한 괴물인 고블린도 접근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브라우니가 고블린을 쫓아버리기 때문이다.
브라우니는 화가 많이 나면 사람들을 괴롭히는 보가트로 변한다. 보가트는 찢어진 옷을 입고 몸에는 까무잡잡한 털이 나 있다. 만일 브라우니를 모욕하거나 깔보고 억지로 이 일 저 일을 시키면 브라우니가 보가트로 변해 앙갚음을 하니 조심해야 한다. 보가트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브라우니와 달리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골칫거리이자 말썽꾸러기다. 장난기가 있는 브라우니는 간혹 장난을 치느라 방을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보가트는 문이 갑자기 쾅 하고 닫히게 하고 우유를 상하게 하거나 열쇠와 양말, 중요한 물건을 숨기는 심술궂은 장난을 친다. 벽을 쾅쾅 두드려대고 자는 사람들을 꼬집거나 그룻을 엎어버리고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을 괴롭힌다.
보가트가 사는 집에서는 밤이 되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마법을 써서 우유가 든 컵을 엎지르거나 접시와 식기들을 공중에 떠다니게 했다가 떨어뜨려 깨뜨리는 등 집에 유령이 든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가축들은 두려움에 떨며 울어대고,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발소리가 들려서 사람들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브라우니일 때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을 배탈나게 하거나 해충과 쥐에 시달리게 해서 괴롭히기도 한다. 모습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가트가 친 장난을 브라우니가 한 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보가트는 강력한 주문을 외지 않으면 절대 쫓아낼 수 없기 때문에 보가트를 퇴치하려면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은 이사를 갈 수밖에 없다. 이사를 갈 때도 보가트가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집안 식구들이 보가트의 괴롭힘에 지쳐 몰래 이사를 가려 해도 보가트가 짐수레에 숨어 타고 따라간다고 한다.
그런데 보가트를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보가트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변해 나타나기를 좋아한다. 가령 머리가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큰 소리로 웃어대면 실망한 보가트가 스스로 집을 나간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생전에 브라우니가 그에게 문학적 상상력을 주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슨이 자는 동안 브라우니가 꿈에 나타나 환상적인 이야깃거리를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의사 지킬 박사가 악마와 같은 하이드로 변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란 소설을 쓸 때도 브라우니가 꿈에 나타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는 해리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말포이의 집에서 일하는 집안일 요정 도비가 등장한다. 브라우니의 사촌쯤 되는 도비는 해리에게 닥칠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몰래 해리를 찾아온다. 큰 머리에 박쥐처럼 큰 귀를 가진 도비는 집주인에게 철저히 순종적인 존재로 새 옷을 선물받아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어린이 동화책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스파이더위크가의 연대기’에도 브라우니가 등장한다. 옛날 영국 사람들은 평생 집에서 일하던 충직한 하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브라우니가 되어 여전히 집안일을 해준다고 믿었다. <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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