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돌입은 '러시아 스캔들' 이후 민주당의 사실상 두 번째 대공세다. 내년 미국 대선을 불과 1년 남짓 남겨둔 시점에 민주당의 마지막 반전카드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번 사안이 트럼프 대통령을 수세로 내몰 수도 있지만, 향배에 따라서는 민주당도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이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언론들에 따르면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중상모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조력을 시도했는지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상과의 부당한 통화를 통해 헌법적 책무를 저버렸다면서 "아무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나는 오늘 하원 6개 상임위원회가 관련 조사를 진행할 것을 지시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의혹은 정보당국 출신 '내부 고발자'의 고발이 도화선이 됐다. 미국 언론들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아들 헌터에 대한 조사를 압박했다고 보도하면서 수면 위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원조 중단 카드를 무기로 활용해 우크라이나 측을 압박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바이든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개인 고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협력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바이든 전 부통령 관련 의혹은 바이든 후보가 2016년 초 우크라이나 측에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바이든 후보의 아들인 헌터가 관여하던 현지 에너지 회사의 소유주를 '수사 레이더망'에 올려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총장은 결국 해임됐다.
이날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탄핵 조사 개시 방침에 대해 즉각 대응을 시사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유엔에 있는 이와 같은 중요한 날에 이처럼 많은 일과 성공을 이룬 가운데 민주당은 마녀사냥 쓰레기 속보로 이를 망치고 손상시켜야 했다. 우리나라를 위해 매우 나쁘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와 관련해 "기밀을 완전히 해제하고 편집하지 않은 녹취록 원본을 내일 공개할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바이든 전 부통령과 아들 헌터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조사 외압' 의혹에 대해 어떠한 압력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 남용과 대통령직의 모든 요소를 이용해 나를 비방하는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며 이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바이든과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이번 의혹을 '외국에 의한 선거 개입'으로 규정하고 의회가 즉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탄핵정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 간 공모 의혹을 둘러싼 '러시아 스캔들'이 로버트 뮬러 특검팀의 수사 결과 보고서 공개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으며 탄핵론을 털어낸 지 5개월 만에 재차 불거졌다.
WP는 하원 민주당 의원 235명 중 탄핵 추진에 찬성하는 의원이 150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 탄핵 절차는 하원의 탄핵 조사를 거쳐 탄핵소추안이 제출돼 과반 찬성으로 통과되면,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원에서 심리를 거쳐 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은 탄핵을 당하고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상실한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이, 상원은 공화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다. 탄핵안의 하원 통과가 이뤄지더라도 상원 문턱까지 넘어 현실화할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대형 스캔들로 스스로 퇴진을 선택한 전직 대통령들을 제외하고 미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사례는 아직 없다.
한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의 이번 탄핵조사 결정은 탄핵 그 자체에 대한 찬반 여부보다는 대권을 앞두고 지지율을 선점하려는 민주당의 승부수로 보인다"면서 "정치역학에 따라 바이든 감싸기를 선택한 민주당 지도부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 이번 공방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