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도전과 과제] 정용진, '일렉트로맨'으로 가성비·가심비 잡고 유통명가 잇다

2019-09-2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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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맨, 웹툰ㆍ영화 추진…삐에로쑈핑ㆍ스타필드 등 계속된 도전

온라인 유통-콘텐츠 시너지 추구…유통 넘어 종합식품제조사로 확장

2018년 10월 ‘온라인 신설 법인 신주 인수 계약 체결 발표식’에 참석한 정용진 부회장. [사진= 신세계 제공]

[데일리동방] 유통혁명에 나선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그룹의 아이언맨이 되려 한다. 온오프라인과 콘텐츠 시너지를 겨냥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도전이다.

신세계그룹 후계 구도는 분리경영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이마트,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백화점을 맡는 식이다. 두 사람은 2016년 5월 각각 보유하던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을 맞교환했다. 두 회사 최대 주주는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이다. 그는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각각 18.22%씩 갖고 있다. 이후 지분 승계는 남매의 사업 관련성을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 부회장의 이마트 주식은 10.33%, 정유경 총괄사장의 신세계 지분은 9.83%다.

◆"스토리 있는 콘텐츠"로 새 수익원 기대

이마트의 수익창출력은 약해지고 있다. 2분기 이마트 영업이익은 별도기준 71억원 적자를 냈다. 전년 동기 영업이익은 546억원이었다. 주력인 대형마트 매출 하락과 이에 따른 임차료,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보유세 인상 등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온라인시장 확대와 소량 구매로 돌아선 소비 경향이 대형 할인점의 매력을 저하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 부회장의 돌파구는 크게 온라인 유통과 콘텐츠 시너지로 나눌 수 있다. 그는 올해 경영 화두로 “중간은 없다”고 제시하고 가치소비와 저가 구매를 중시하는 스마트 컨슈머에 미래를 걸었다. 지난해 투자금 1조원을 확보하고 지난 3월 이마트와 신세계 온라인 쇼핑몰 사업부를 에스에스지닷컴(SSG.COM・쓱닷컴)으로 통합했다. 기존의 물류・배송망과 상품 경쟁력, IT 기술 향상으로 2023년까지 매출 10조원을 달성해 온라인 1위에 오른다는 목표다.

하지만 상품마진이 낮은 상황에서 시장 선점을 위한 마케팅비와 물류비로 출혈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쓱닷컴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오프라인에서는 해외에서 검증된 사업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적극적이다. 2030 세대를 노린 ‘요지경 만물상 삐에로 쑈핑’이 대표적이다. 일본 잡화점 돈키호테에 착안해 지난해 6월 스타필드코엑스몰에서 문을 연 삐에로쑈핑은 기존 매장과 달리 정신없이 늘어선 상품 사이에서 보물찾기 하듯 물건을 찾아야 한다.

연회비 없는 열린 창고형 매장을 표방한 트레이더스는 날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월계점은 6일만에 누적매출 75억원을 기록했다. 첫날 매출은 13억5000만원으로 2014년 수원점 개점일 최대 매출 기록을 5년만에 뛰어넘었다. 2010년 처음 문을 연 트레이더스 점포는 2분기 기준 16곳으로 늘었다.

애플과 마블을 좋아하는 정 부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일류기업의 조건으로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 개발을 내세웠다. 앞서 이마트는 키덜트 가전매장 일렉트로마트의 상징인 일렉트로맨 웹툰을 2016년 네이버에 연재했다. 일렉트로맨이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 생명의 씨앗 ‘뮤오트’를 지키며 싸우는 내용이다. 일렉트로맨과 친숙해진 손님들이 매장을 자주 찾으며 매출을 높여줬다는 판단이다. 2분기 이마트 전문점 가운데 적자를 비켜간 곳이 노브랜드와 일렉트로마트였다.
 

일렉트로맨[사진=신세계 제공]


정 부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일렉트로맨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일렉트로맨 문화산업전문회사’를 차리고 2020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상품・점포・브랜드 등을 다양한 스토리로 묶고 소비자 수요를 따라 재편집하면 근본적 차별화와 지속적인 관심을 얻는다는 계산이다.

영화가 나오면 해당 이야기와 캐릭터가 의류, 학용품, 완구, 매장 구성에 활용될 예정이다. 일렉트로맨 콘텐츠는 쇼핑과 문화, 레져, 힐링, 맛집을 한데 모은 스타필드에도 접목된다.

◆실패 '중국' 대신 베트남·몽골 진출

정 부회장의 도전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노브랜드 가맹 사업 본격화 움직임에 지난해 이마트24 점주들이 반발한 사례가 유명하다. 신세계는 이마트24의 노브랜드 제품 매입을 중단하고 재고를 소진하는 식으로 중복 상품을 줄이기로 했다. 당시 정 부회장은 뼈아픈 실책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이마트24에서는 아임e 같은 자체 상표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경기 하남 미사지구에 지으려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는 교통 불편을 우려한 주민들 반발로 무산됐다. 2017년 부천시 신세계백화점 유치 사업도 인천시 반대로 취소됐다.

2017년 이마트의 중국시장 철수는 뼈아팠다. 1997년 중국 진출 이후 매장을 30개까지 늘렸지만 현지 안착에 실패했다. 대신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진출에 나서고 있다. 2015년 문을 연 베트남 1호점이 순항하고 있어 호치민시 인구밀집지역에 추가 점포 출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9월 6일 이마트 몽골 3호점이 문을 열었다.

이 밖에 자체상표 피코크로 홍콩과 미국시장 공략에 나서는 한편 노브랜드와 이마트 e브랜드를 홍콩 슈퍼마켓 체인점 웰컴의 모든 점포에 판다는 계획이다.

사업은 제조업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 가동을 시작한 오산 2공장으로 2023년까지 신세계푸드를 매출 5조원 규모 종합식품제조사로 키운다는 목표다. 기존 유통망에 제조업을 덧붙이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사업 방향에 영향을 줬다.

◆도전정신, 정용진의 유통 명가 기반

위기 속에서 도전을 반복하는 신세계의 뿌리는 삼성가(家)에서 자라났다. 정 부회장 외할아버지는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이다. 어머니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 회장의 막내 딸이다. 정 부회장과 더불어 현장 경영 행보에 집중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외사촌이자 경복고 동기동창이다.

이명희 회장은 오늘날 신세계의 토대를 단단히 다져놓았다. 1967년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결혼한 뒤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담당 이사로 경영 일선에 나섰다. 신세계그룹이 1997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매출을 40% 이상 끌어올렸다. 전문경영인에게 책임 경영을 맡기며 핵심역량을 유통 분야에 집중한 결과라는 평가다.

정 부회장이 삐에로쑈핑처럼 해외 성공 사례를 국내에 적용하는 전략 역시 젊은 시절 이 회장을 닮았다. 신세계를 유통 강자로 올려놓은 이마트는 이 회장의 안목과 추진력으로 탄생했다. 1980년대 미국에 머물던 이명희 회장은 창고형 점포를 둘러보다 사업 가능성을 확인하고 1993년 서울 창동에 테스트 점포를 열었다. 이마트는 개점 첫날 2만7000여명이 몰리고 하루 매출 1억원을 넘기면서 업계에 화제를 낳았다. 2000년대 이마트를 본격적으로 확장하던 이 회장은 2006년 월마트코리아 인수로 몸집을 불렸다. 1998년 한국에 진출한 월마트가 적자를 거듭하다 철수하자 이마트가 지분 전량을 8250억원에 인수했다. 국내 월마트 매장 16곳이 이마트로 간판을 바꿔 달며 매장 수가 100개를 넘겼다. 이를 기점으로 이마트는 유통업계 독주 기반을 다졌다. 월마트가 싼 가격만을 내세운 반면 이마트는 판매 장소를 과감히 휴게공간으로 바꾸는 등 편의성도 갖추며 승부를 냈다. 정 부회장이 남매 경영 한 축으로 이마트와 스타필드를 맡은 점도 선택과 집중 전략의 연장이다.

도전정신은 평소 정 부회장이 강조해온 방향이자 다짐이다. 그는 2016년 8월 스타필드 하남 조감도를 소셜 미디어에 붙이고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항상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며 “그렇지만 이미 시작했으니 낙장불입의 각오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듬해 사내 특강에서는 이마트가 멋진 이유로 가장 앞선 시도와 많은 시행착오를 꼽았다.

장기전에 나선 이마트는 끈질긴 도전으로 유통 명가의 명성을 이어가려 한다. 저가 제품 판매보다 중요한 ‘마음 장사’는 영화 '일렉트로맨'에 달렸다. 정 부회장은 합리적 소비에 ‘가심비(가격 대 만족비)’를 심어줄 콘텐츠의 힘을 믿는다. 아이언맨과 나란히 진열된 일렉트로맨 인형에 고사리손이 닿는 모습이 그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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