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오는 24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사흘 동안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선 공동선언을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G7 정상회의 출범 후 44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개최국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다양한 글로벌 현안을 두고 G7 사이에서 원만한 조율이 힘들다고 인정했다.
그는 "어떤 주제에 대해 참가국이 동의하지 않을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 공동선언은 없을 것이다. 대신 연대, 약속, 후속 조치 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5년 출범 후 강대국 정상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장이었던 G7 정상회의가 공동선언을 채택하지 못하고 막을 내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NHK는 지적했다. 글로벌 주요 현안을 둘러싼 G7 사이에 불협화음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보호무역주의나 지구온난화 대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과 나머지 나라와의 대립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 핵협정 유지를 원하는 유럽이 미국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정보기술(IT) 공룡들을 겨냥해 유럽이 추진하는 디지털세를 두고도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디지털세를 매기는 나라에 관세폭탄으로 맞불을 놓겠다고 경고해왔다.
올해 회의에서는 G7 대립 구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는 미국과 나머지 6개국이 대결하는 구도였다. 반(反)트럼프 전선을 형성한 G6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일방주의를 공격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홀로 맞서는 양상이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엔 G2+G5의 구도로 바뀔 수 있다고 봤다. 지난달 취임한 존슨 영국 총리가 이번 회의에서 친(親)트럼프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에 탈퇴 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는 존슨 총리는 아무런 합의 없이 EU와 이혼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불사하겠다며 EU와 대립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는 일방주의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친분을 과시해왔다.
외교 관측통들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존슨 총리가 어떤 노선을 탈지 확신할 수 없지만, 영·미 무역협정을 염두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을 피하는 동시에 나머지 정상들에게서 고립되지 않으려 조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정상들의 입지 약화 속에 G5의 힘은 다소 빠질 전망이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정국혼란 속에 이미 사임 의사를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총선을 두달 앞두고 뇌물수사 외압 스캔들에 휘말려 연임에 빨간불이 켜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난민 위기와 경제 부진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다자주의와 세계화 수문장을 자처하는 마크롱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기대치를 대폭 낮춘 이유와 무관치 않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회의에서 불평등과 기후변화에 관한 논의를 확대하기 위해 호주, 칠레, 이집트, 인도, 세네갈, 르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등 아시아·아프리카 8개국 정상을 함께 초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