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대일 전략, 냉정심 잃지말고 멀리보자

2019-08-05 05:00
  • 글자크기 설정
 

[조진구 교수]



예상대로 지난 2일 일본 정부는 수출무역관리령의 일부를 개정해 수출 절차를 간소화화는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수출상대국의 수출관리제도의 신뢰도에 따라 화이트국가와 비화이트국가로 구분했었는데, 이번 개정을 통해 A, B, C, D 등 네 개 그룹으로 나눠 한국을 신뢰도가 가장 높은 A그룹에서 제외해 둘째인 B그룹으로 강등시켰다. A그룹이 종전의 화이트국가다.

이번 조치로 한국으로의 모든 수출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출규제 품목은 지난달 초 규제대상이 된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3개 핵심 소재 이외에 공작기계, 탄소섬유, 통신기기, 전자부품 등으로 대폭 확대될 것이다. 더구나 일본 경제산업성이 군사전용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개별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며, 심사과정에서 우회수출이나 목적외 전용 등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으로의 수출은 금지된다.

일본 정부는 한·일관계의 신뢰 훼손과 수출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생을 수출규제 이유로 들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본 기업에 배상 명령을 내린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는 관계가 없는 안전보장상의 운용 재검토라는 옹색한 변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본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무역문제를 도구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일본 자신이 주장해온 자유무역이나 정경분리 원칙과도 상충한다.

일본의 부당한 일방적 조치에 대해 지난 2일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이며,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국민들의 분노와 항의가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보이콧 저팬’, 아베 정권 규탄 촛불 시위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냉전시대인 1965년 6월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과 부속협정이 만들어낸 1965년 체제의 부산물이다. 1965년 체제는 35년간의 굴욕적인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의 불법성과 책임을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던 불완전한 것이었다.

한·일 간의 국력 차이, 경제개발 자금의 필요성 등 당시 한국에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한 정치적 타협이었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13년 8개월의 교섭 과정에서 식민통치의 불법성 인정을 관철하려고 했다면 국교수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이외에 상업차관을 포함하면 10년간 일본으로부터 받은 경제협력자금은 10억 달러에 달한다. 1964년 한국의 연간수출총액이 1억 달러, 일본의 외환보유고가 15억 달러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국교정상화 이후 곡절은 많았지만 한·일관계는 연간 1000만명의 양국민이 왕래하는 1일 생활권이 될 정도로 발전해왔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역내 국가들 간 국력 차이가 줄어든 구조적인 변화, 특히 미·중 간의 패권경쟁과 이로 인한 마찰이 장기화할 조짐조차 보이고 있다. 과거역사에 대한 기억과 인식의 차이에 더해 영토를 둘러싼 대립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분야에서 한·일 양국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서로 이익을 확대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일의 경제적 충돌이 어느 정도 손실을 초래할지 추산하기 어려우며,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일본과의 싸움에 매진할 정도로 녹록지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심을 잃지 않고 멀리 내다보면서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문제의 해결 없이 무역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에 의한 보상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고 말한 바 있다(7월 15일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 현재의 한·일 갈등이 회복 불가능한 사태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화이트국가 제외 각의 결정의 시행을 유예하는 대신,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동결을 위해 피해자 측과 즉각 접촉해 이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양국 정부는 교섭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닫아서는 안 된다. 양국을 둘러싼 환경은 50년 전이나 10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2017년 7월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난 양국 정상은 셔틀외교의 복원에 합의했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유엔총회나 다자간 국제회의를 계기로 여러 번 만났지만 한·일관계만을 의제로 깊이 있는 의견교환을 하지는 못했다.

양국은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와 국제정세에 대한 상호인식과 미래 비전을 협의하고 공유하는 외교·국방장관 간의 2+2 같은 고위급 전략대화 채널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한·일 간의 ‘경제전’이 장기화하면 할수록 양국 기업과 국민은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며, 그만큼 양국 국민 사이의 불신과 증오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그런 재앙을 막는 것이야말로 ‘지금’ 양국 최고지도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