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애널리스트들은 노딜 브렉시트 현실화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영국의 정국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파운드의 추가 하락을 점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이날 달러·파운드 환율은 1.2120달러까지 미끄러지면서 2017년 3월 이후 최저점을 찍었다. 이달 들어서만 4% 가량 떨어졌다. 한국시간 31일 오후 2시 현재는 낙폭을 일부 만회하면서 1.2159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파운드화는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한 이후 약세가 본격화됐다. 국민투표 직전엔 1파운드당 1.49달러였던 것이 2017년 1월에는 1.20달러까지 미끄러졌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영국을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빼낼 것이라는 공포가 번졌을 때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캐런 워드 JP모건자산운용 시장 전략가는 "노딜 브렉시트는 우리가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아니지만 최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건이 좋아지기보단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파운드가 더 하락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유니크레디트는 30일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종전 25~30%에서 40%까지 올려잡았다. 치아라 실베스트리 유니크레디트 이코노미스트는 존슨 총리가 "유권자들로부터 노딜 브렉시트 추진 권한을 위임받기 위해" 9월 초에 조기 총선을 치를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선 파운드 값이 유로와 등가(1파운드=1유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파운드는 유로를 상대로도 12주째 하락세다. 이달에만 2.6% 떨어졌다. 최근 외환시장에서 1파운드는 약 1.09유로 수준에 거래된다.
해미쉬 무레스 OFX 선임 외환 전략가는 CNBC를 통해 "노딜 브렉시트만은 막아야 한다는 영국 하원과 노딜 브렉시트를 불사하겠다는 존슨 총리가 격돌하면서 총리 불신임 투표나 조기 총선 등 정국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며 이 경우 파운드와 유로가 등가를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주 BMO캐피털마켓 애널리스트들은 노딜 브렉시트와 영국의 조기총선 리스크를 이유로 파운드 값 전망치를 하향조정했다. 이들은 "10월 31일 전에 영국과 EU가 새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며, 달러·파운드 환율이 3개월 뒤 1.16달러를, 6개월 뒤 1.15달러를 가리킬 것으로 봤다.
파운드 약세가 영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보수당 로버트 핼폰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파운드 하락이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영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 EU 탈퇴 후 영국 경제를 지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파운드 하락에 따른 비용을 간과한 것이라고 CNN머니는 지적했다. 가파른 파운드화의 절하로 수입 물가가 높아져 물가상승률이 임금상승률을 웃돌면 소비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영국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무역수지 적자국이다. 또 파운드 하락은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부추기고 영국 기업들의 달러 부채 상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파운드 가치가 18% 급락한 영향에 2017년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3%까지 오르기도 했다. 수출과 관광업 역시 파운드 약세 효과를 보지 못하는 모양새다.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애틀랜틱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BBC에 "우리의 모든 비용이 달러로 나간다"며 실적 악화를 경고했다. 영국 수출업체 역시 호황은커녕 수입 원자재 및 연료비 증가에 고전하고 있다고 CNN머니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