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무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서울대 교수)은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학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향후 우리나라의 국토·도시계획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는 국토·도시 분야를 연구하는 학술 연구 단체로서 약 7200명의 개인 회원 및 공공·민간 기관들의 단체 회원으로 구성됐다. 이 학회는 1959년 7월 25일 설립돼 이달로 정확히 60주년을 맞았다.
정창무 학회장은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는 우리나라의 도로망 구축, 산업단지 조성 등 국가 인프라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며 "아울러 신도시, 혁신도시는 물론 최근 화두로 떠오른 스마트 시티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 및 도시 형성의 패러다임을 선도해온 명실상부한 국내 국토·도시계획 분야의 대표 학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학회는 국토 분야의 대표 학술지인 '국토계획'과 영문 학술지인 'IJUS(International Journal of Urban Science)'를 발간하는 등 왕성한 학술 활동도 전개해 나가고 있다"며 "이는 국토·도시계획 전문 단체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고 내실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학회장은 국토·도시계획 개념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토, 도시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 사회에 진입하면서부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재돼 있지 않은 용어"라며 "도시는 일본인들이 서양의 '시티(Cit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단어다. '도(都)'는 '왕의 집', '시(市)'는 시장을 뜻한다. 도시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결합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토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가 나라의 소유였기에, 국토가 아닌 '왕토'라는 용어가 쓰였다.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면서 국토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며 "국토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63년 국토건설종합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다. 국토는 이때부터 나라 토지의 개념을 넘어 경제 발전의 수단 및 도구, 생활 활동이 이뤄지는 장소로 개념이 확장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학회장은 우리나라의 국토·도시계획 추진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빨랐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의 진행이 우리나라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분명 일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는 도시화율(전체 인구 중 도시에 사는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달하는 나라다. 게다가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유례없을 만큼 빠른 도시화가 이뤄졌다"며 "농경사회에서 도시화가 진행되는 데 영국이나 프랑스는 120~130년, 미국은 10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는데 우리나라는 불과 40~5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40~50년 만에 도시화가 진행됐다는 것은 할아버지 세대와 손주 세대의 의식 격차가 생겨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역 불균형, 교통 체증 발생, 과도한 산업화 등도 빠른 도시화에 따른 부작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나라 국토·도시계획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도시의 전반적 기능은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며 "무엇보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 대도시 대부분이 선진국 도시들 상당수와 비교해도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수월하고, 가로 정비가 잘돼 있으며, 범죄율도 낮다는 것이다. 특히 1·2기 신도시의 경우 한국 특유의 생활양식이 더해진 안전한 도시로 자리매김했고, 이는 곧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학회장은 신도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나가며 "신도시는 물론 세종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산업도시 등 우리나라만큼 나름대로 다양한 도시 조성의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며 "최근 쿠웨이트, 이라크, 인도 등 제3 세계 국가들이 국내 신도시 조성 노하우를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한국형 도시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방증이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빠른 도시화, 신도시 건설 등이 국내 경제 성장을 유도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 성장의 과실로 도시의 발전이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인과 관계를 밝히긴 어렵다"면서도 "확실한 점은 국토·도시계획 발전이 경제 선순환 구조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학회장은 이 같은 국토·도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계를 갖고 주도하는 '톱 다운(Top Down)' 방식을 토대로 하되, 부족한 부분을 국민 의견으로 보충하는 '보텀 업(Bottom Up)' 방식을 혼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국내 국토·도시계획에 있어 안타까운 점은 너무 보텀 업 방식에 치중해 있다는 점이다. 도시재생이 그 예"라며 "미국, 영국 등 선진국 대분은 톱 다운 방식을 기틀로 모자라는 부분에 주민 아이디어를 보완한다"고 말했다.
정 학회장은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를 조성한 도시공원 설계자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가 뉴욕 한복판 100만평이 넘는 땅을 공원으로 지정했을 당시 시민들의 반대가 엄청났다"며 "보텀 업 방식이 주가 됐다면 오늘날의 뉴욕 센트럴 파크는 없었을 것이다. 센트럴 파크 사례처럼 국토·도시계획에 있어 전문가의 확실한 신념을 토대로 한 강력한 톱 다운 방식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향후 우리나라 국토·도시계획이 나아가는 데 있어 '빅 플랜', '스몰 디벨롭먼트'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학회장는 "국민이 국토·도시계획에 대해 공감하고 또 이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빅 플랜, 즉 커다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며 "이번 3기 신도시를 예로 든다면, 정부가 이미 몇 년 전부터 대략 어느 지역에 공급에 나서겠다. 얼마 정도의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큰 밑그림을 미리 국민에게 알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도시 공급을 앞두고 주택 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한다면, 공급 계획 발표는 연기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공급 계획이 발표된다는 사실을 국민이 숙지하고 있어 정책 발표 시 충격도 덜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은 국토·도시계획을 국민에게 미리 알리기 때문에 국민 역시 모든 땅이 어떻게 개발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며 "싱가포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시계획확인원을 보면 필지별 개발 계획은 물론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의 정보까지 상세히 기입돼 있다"고 말했다.
정 학회장은 "국내에서 주택 시장의 불안정이 반복되고, 부동산 정책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결국 빅 플랜의 부재에 따른 것"이라며 "특히 향후 통일은 물론 유라시아 진출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라도 국토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장기적 측면의 국토·도시계획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