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가 '충효의 고장'으로. 통영이 '한려수도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지역에 흐르는 유구한 역사문화를 알고 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거룩한 분노, 푸른 물결 위에 흐르다···진주성과 촉석루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선조 2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진주성을 재차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 공격으로 관군과 의병 7만여명이 희생됐고, 왜군은 촉석루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술판을 벌였다.
이 자리에 있었던 논개는 술에 취한 왜장을 촉석루 밑 한 바위로 유인했고, 그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임진왜란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왜군과 전투를 치렀던 역사의 현장이 바로 진주성이다.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진주성 북문인 공북문은 지난 2002년 복원됐다.
진주성은 촉석루와 한 여인, '논개'의 순절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1760m 길이의 진주성은 내성이다. 본래 내성 밖으로 외성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백성 7만을 몰살하며 대승을 거둔 왜구가 외성을 모두 허물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강변 벼랑 위에 서 있는 촉석루. 한여름임에도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지친 몸을 다독이고, 탁 트인 풍경에 고된 마음은 위로를 받는다.
과거 수많은 풍류객이 촉석루에 올라 읊었던 시(詩)가 증명하듯, 여전히 촉석루에 서서 잔잔한 남강을 바라보며 노래나 시 한 수를 읊조리는 이들이 적잖다. 한쪽에는 시원한 바람에 취해 낮잠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많은 이에게 촉석루는 훌륭한 안식처가 돼주고 있다.
진주성 안에는 논개를 모신 사당인 의기사와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는 '의암'이 자리한다. 단아하고 고고한 옛 여인 논개의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진주성은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위로 선정되기도 한 명소다. 낮에 보는 풍경도 좋지만 야경이 일품이라 야간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다.
◆통영의 역사와 함께한 곳···세병관
조선 시대 경상 전라 충청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영(오늘날의 해군 본부)이 있던 통영의 삼도수군은 300여년 동안 왜적의 침입을 방비했다. 통영(統營)이란 지역의 이름도 통제영(統制營)에서 유래했다.
통제영의 중심 건물은 국보 제305호 세병관이다. 통제영의 100여 관아 중 가장 먼저 세병관이 건립됐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계획 군사도시'였던 통영은 세병관 건립과 역사를 나란히 한다.
수백 년 세월을 버티고 선 건물의 기품에 넋을 잃는다. 웅장한 나무기둥 하나에 살포시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애국심이 온몸에 흐르는 듯하다.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3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현재의 통영 관내)에 설치했기 때문에 이충무공이 삼도수군 통제사라는 자격으로 통영 세병관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명나라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팔사품이 전시된 충렬사,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제승당 등에는 이충무공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이 나라의 근간을 흔들던 그때에서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통영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섬이 점점이 떠 있는 쪽빛 바다를 오롯이 품은 통영이다.
통영 거북선 등 옛 통제영 8전선이 항시 정박하던 ‘선소’ 강구안에는 거북머리 밑에 귀신머리가 있는 전라 좌수영 거북선과 서울시에서 건너온 한강 거북선, 빠른 속도로 운행하면서 화포를 사용할 수 있는 통제영 거북선이 있다. 모든 거북선을 승선해 관람할 수 있다.
내부에는 조선 수군 복장을 한 마네킹부터 이순신 장군, 세계 4대 해전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한산대첩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감상할 수 있다. 재미와 역사적 지식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