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은 상반기 5명의 개인 소장가들이 17세기 조선의 중심 가문의 부장품인 ‘백자 청화 묘지’, 18세기 영조(재위, 1724~1776년)대 탕평정치를 대표하는 명신 송인명(1689~1746년, 호 장밀헌)의 문집인 ‘장밀헌집’, 20세기 북한 화가 선우영(1946~2009년)이 그린 ‘금강산 묘길상도’ 등 6건 19점을 기증했다고 3일 밝혔다.
전주유씨 춘호공파 유양석(92) 선생은 전평군 유심(1608~1667년)의 ‘백자 청화 묘지’ 5점(1686년작)을 기증했다. 묘지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삶의 이야기를 돌이나 도자로 만든 판에 새기거나 적어서 무덤 주변에 묻어두는 것이다. 이번에 기증된 유심의 묘지는 백자로 만든 네모 판에 그의 가계, 생애, 관직 이력, 자손, 성품에 관한 내용을 청화안료로 적은 것으로, 1981년 이장된 전주유씨 5대봉군의 옛 묘역에 지난해 비가 많이 온 후 발견됐다.
1981년 전주유씨 5대봉군묘를 이장할 때, 유심의 묘와, 그의 증조부 춘호 유영경(1550~1608년, 광해군 때 영의정), 조부 유열, 부친 유정량(1591~1663년)까지 4대 묘에서 수습된 명기 등 93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바 있다. 이번 기증으로 유심의 묘지와 명기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유심은 선조(재위 1567~1608년)와 인빈 김씨(1555~1613년) 사이에서 태어난 정휘옹주(1593~1653년)와 혼인한 부마 전창군 유정량의 장남이다. 유심은 선조 임금의 외손자이자 인조 (재위 1623~1649년, 인빈 김씨의 아들인 정원군의 장남)와는 내외사촌 관계가 된다. 유심은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로 유배 간 부친을 따라 호남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과거에 급제해 관직생활을 하고 도승지를 역임했다.
영조 즉위 과정에서 공을 세워 신임이 두터웠던 송인명의 미간행 문집 ‘장밀헌집’ 6책 1질은 9대손 송재원(40)씨가 기증했다. 송인명은 소론을 대표하며, 영조대 탕평 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관료이나 그동안 문집이 알려지지 않아 그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다. 이번 기증으로 영조대 탕평정치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기대하고 있다. ‘장밀헌집’은 특히 상소문과 간이 상소문인 차자의 비중이 높아 송인명의 정치적 견해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자료다. 이 문집은 1790년 후손들이 그의 저작을 모아 써 문집으로서 체재를 갖춘 상태로 인쇄가 이뤄지기 전 단계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문집 간행 과정을 알려준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 의궤 연구에 큰 성과를 이룬 미술사학자 이성미(80)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오륜행실도’ 5책을 기증했다. 1797년(정조 21년)에 간행한 이 ‘오륜행실도’는 조선시대 유교윤리 강화 및 한글 활용을 보여주는 전적이다. 첫 번째 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김원룡(1922~1993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 ‘오륜행실도’의 의의에 대해 쓴 제발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교수의 부군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외무부 장관,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79)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북한 화가 선우영(1946~2009년)이 2000년에 그린 ‘금강산 묘길상’ 1점을 기증했다. 이 그림은 한 이사장이 2006년 10월 윤이상음악제에 참관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천리마 제작소에서 선우영 작가로부터 구입했다. 선우영은 북한 최고등급인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2002년 2월 미국 전시에 이어 5월 서울남북평화미술축전에도 출품했다. 이 그림은 선우영 특유의 세화기법과 진한 채색으로 금강산 만폭동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묘길상과 주변 풍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평가된다.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입수한 첫 번째 북한미술품이다.
박영호(64) 선생은 근대기 활동한 서화가인 이도영(1884~1933년)이 중국 북송의 유명한 서화가이자 괴이한 돌을 좋아한 미불(1051~1107년)이 바위에 절을 하는 모습을 그린 ‘미불백석도’ 1점과 이상범(1897~1972년), 노수현(1899~1978년), 지성채(1899~1980년) 등이 함께 그린 ‘합벽 화조도’ 1점을 기증했다. 이 그림 2점은 지난해 11월 작고한 박영호의 모친이 1970년대에 구입한 것으로 박 선생은 모친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오랫동안 기억되고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작품을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소중한 기증품들을 영구히 보존하고 전시와 연구에 활용하며, 특히 기증자들의 높고 소중한 문화 사랑 정신을 받들고 전하는데 더욱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