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승부는 그의 예측보다 2년 앞당겨져 시작됐다.
런 회장은 "2000년에 100억 달러를 받고 미국 기업에 화웨이를 넘길 생각도 했다"며 "화웨이와 미국이 산 정상에서 만났을 때 미국 자본이 투입돼 있으면 탄압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승부가 일찍 시작돼 대비가 충분치 않았던 걸까. 아니면 탄압의 정도가 예상보다 심했던 걸까.
그러면서도 최근의 상황이 "화웨이의 전진하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며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강변했다.
런 회장의 호언은 실현될 수 있을까.
◆美 제재에 300억弗 매출 감소
런 회장은 미국의 제재 여파로 향후 2년 동안 매출이 300억 달러(약 35조3370억원)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통신장비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며 미국 기업과 화웨이 간의 거래 관계 단절을 종용했다.
런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기업은 18개월 안에 파산할 수 있다는 각오로 경영 활동을 영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수사였지만 이제는 파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나와 현실화할 가능성까지 고조되는 상황이다.
런 회장은 "감산에 돌입한 탓에 올해 매출이 1000억 달러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매출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매년 매출 규모가 10~15%씩 증가해 왔던 걸 감안하면 타격이 크다는 의미다.
실제 블룸버그 통신은 올해 화웨이의 해외 스마트폰 출하량이 40~6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을 벗어난 지역의 화웨이 '비토(Veto)'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뭐가 직격탄이 됐을까. 스마트폰 분야의 경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화웨이 제재 참여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글은 화웨이에 대해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의 업데이트 중단을 선언했다. 이 같은 방침이 철회되지 않는 한 화웨이는 안드로이드폰을 만들 수 없다.
자체 OS인 '훙멍(鴻蒙)'을 개발해 온 화웨이는 극복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인 삼성도 자체 OS 타이젠을 안착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PC와 스마트폰 내 대부분의 문서 작업을 지원하는 MS의 이탈도 아프다. 종합하면 미국의 제재가 지속되는 한 화웨이폰은 중국 내에서만 효용성이 있는 인트라(Intra)폰이 될 공산이 크다.
화웨이의 주력 품목인 통신장비 분야의 타격은 더욱 치명적이다.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통신장비의 핵심으로 꼽히는 칩, 쉽게 얘기하면 시스템 반도체 수급이 녹록지 않아졌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 인텔 등 미국 기업인 탓이다.
런 회장은 "우리는 심장과 연료 탱크는 보호했지만 (미국의 압박 때문에) 그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은 보호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심장으로 칭할 수 있는 부분의 타격도 만만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화웨이 살리기 나선 中
화웨이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중국의 정보기술(IT) 공룡으로 불리는 BAT(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크다.
PC 제조업체인 레노버 매출의 2배,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샤오미 매출의 6배에 해당한다.
화웨이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7만9400위안(약 1억2800만원)으로 중국 내 1위다.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27만2000위안(약 4500만원)으로 전체 평균의 5배 이상이다.
법인세 납부액은 710억 위안(약 11조5000억원)에 달한다. 화웨이는 중국의 IT 산업 굴기를 상징하는 대표 주자다. 중국이 화웨이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8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미국이 중국 기업을 공정하게 대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 제재를 비판할 때 쓰는 관용 어구다.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는 미·중 무역전쟁을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됐다.
중국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지난 6일 차이나모바일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 중국광전 등 4곳에 5G 영업 허가증을 발급했다. 예정보다 5G 상용화 일정을 1년 정도 앞당겼다.
5G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화웨이가 버틸 수 있는 내수 시장을 만들어주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매일경제신문은 "5G 상용화로 2020~2025년 직접적인 경제 생산 규모가 10조6000억 위안(약 1804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파생 효과까지 감안하면 24조8000억 위안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최대 수혜자는 화웨이다.
중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은 5G 통신장비 입찰 물량의 52%를 화웨이에 몰아줬다. 또 다른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ZTE의 몫까지 더하면 60%에 육박한다.
중국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올해에만 5G 기지국 건설에 320억 위안(약 5조5000억원)가량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화웨이는 올해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50%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마케팅과 유통망 확대에 투자를 집중하는 모습이다.
구글·MS 등의 이탈로 중국 내수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 데 따른 고육책인데, 중국 내 화웨이 지지 열기를 감안하면 달성 가능한 목표로 보인다.
◆中 "화웨이 3~5년만 버티면 된다"
화웨이는 제품 생산을 위한 핵심 부품 재고량이 최대 2년치 정도 비축돼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관계는 확인할 수 없지만 기업이 장사를 1~2년만 할 것은 아니니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비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미국의 제재에 따른 화웨이의 위기가 3단계로 진행될 것으로 본다.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화웨이의 최대 반도체 공급상 중 하나인 대만 TSMC는 반(反)화웨이 전선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텔과 자일링스 등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도 화웨이 거래 금지 조치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 미국 반도체 업계가 국가 안보와 관련되지 않은 부문의 경우 화웨이와의 거래를 허용해 달라고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700억 달러(약 83조5000억원) 규모의 반도체를 구입했는데, 이 가운데 미국 기업으로부터 110억 달러어치를 사들였다.
다만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지속될 경우 중기적으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이 화웨이에 우호적인 TSMC에 대한 견제에 나선 건 상징적인 사례다. 미국 상무부가 직접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IT 기업이 화웨이 때리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재고가 바닥 나는 시점이 도래하면 화웨이도 생산라인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자가 만난 중국 공업정보화부 관료는 "화웨이가 3년에서 최대 5년 정도만 버틸 수 있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이렇다. 우선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어 조만간 화웨이의 우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최신 공정은 7나노미터 수준인데, 중국은 12나노 공정을 시작했다. 가까운 격차는 아니지만 따라잡기가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화웨이의 5G 기술 경쟁력도 무기다. 중국이 내수 시장을 열어준 것과 별개로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중국 측의 주장이다.
그 근거로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발주된 5G 입찰 가운데 화웨이가 46건의 계약을 따내 1위를 달리고 있다. 노키아가 42건으로 2위를 기록 중이며, 중국 ZTE 40건, 에릭슨 19건 등의 순이다.
화웨이 스스로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국인들은 "알리바바의 빈자리는 텐센트나 바이두가 메울 수 있지만 화웨이가 없어지면 대체할 기업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화웨이는 대체 불가한 국가대표 기업이라는 게 중국 내 인식이다.
런 회장은 "우리가 한평생 원한을 품어서는 낙후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그들(미국)을 배워야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런 회장의 야심은 이뤄질 수 있을까. 이달 말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이뤄질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서 첫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