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로만 본다면 가장 큰 국가인 스웨덴이 1000만명 남짓이고, 핀란드와 노르웨이는 그 절반 정도인 소국들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이들 국가가 갖는 외교적인 영향력과 인지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매년 발표되는 국가경쟁력 지수와 행복 지수에 있어서도 노르딕 국가들은 늘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북유럽 사회는 한국에 있어 하나의 신화처럼 존재한다. 바쁜 삶에 치인 직장인들은 입버릇처럼 북유럽 이민을 얘기하고, 복지사회의 모델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노르딕 국가들이 수행해 온 다양한 형태의 평화 중재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2001년 스웨덴의 요한 페르손 총리가 유럽연합(EU) 의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후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다양한 형태의 인도주의적 지원과 대화 기제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와 노르딕 국가들 간에는 공통점보다 여러 차이들이 존재한다. 사회적·경제적인 차이뿐 아니라 역사적·정치적인 간극도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들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국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으며, 이미 높은 수준의 소득에 도달해 있음에도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어 왔다는 점에서 노르딕 모델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유용성을 가진다.
한국의 노르딕 외교가 신화와 기대를 넘어 실질적인 전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와 공감대를 형성할 접근법이 필요하다.
첫째, 노르딕 국가들의 외교 정책 기조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노르딕 국가들은 대화를 통한 평화를 중요시하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 노력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지를 보여 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국가는 유럽 및 대서양 차원에서 공동안보방위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EU 회원국이고, 노르웨이는 NATO 회원국으로서 미국과의 대서양 동맹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서 노르딕 국가들 역시 유엔 및 EU 차원의 대북 제재에 동참해 왔다.
따라서 경제 제재 완화에 있어서 이들 국가를 통한 독자적인 시도나 미국을 우회하는 전략은 큰 효과를 갖지 못한다. 북한과의 대화 창구로서의 유용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EU와 NATO를 염두에 둔 공동안보정책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상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노르딕 외교에 있어서는 인권, 자유, 위기관리, 환경 등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 외교가 대북 문제에 있어서 상황적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보편적 가치는 종종 후순위로 밀려나기도 했고, 보편적 성격의 글로벌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면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노르딕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신뢰도는 이러한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 때 보다 진전된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셋째, 노르딕 국가의 혁신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실용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혁신에 있어서 지나친 정치적 개입은 금물이고, 상시적이고 현실에 기반한 혁신 전략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노르딕 국가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다. 혁신의 파트너십을 위한 노르딕 외교는 이러한 실용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넷째, 노르딕 국가들의 평화 외교 기조는 러시아, 독일 등 유럽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생존을 위한 투쟁 위에서 형성되었고, 국내·외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선 포용과 공존의 논리를 기반으로 가능했다. 다자간의 평화 구축은 긴 시간에 걸친 공존의 틀을 바탕으로 한다. 동북아에 있어서도 한·일관계의 복원을 포함한 공존의 논리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
평화 구축의 모범사례로서, 그리고 혁신의 파트너로서 노르딕 국가와의 외교는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동북아의 안보·경제적 구상을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앞으로 노르딕 외교가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 지속적인 추가조치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