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 무역갈등으로 촉발된 대외변수뿐만 아니라 내수 지표도 도무지 혈이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가 상반기 부진이 하반기까지 이어지는 ‘상저하저’ 현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반전 없는 성장률··· 하반기 회복도 미지수
지난 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4월 발표된 속보치(-0.3%)보다 0.1% 포인트 낮은 수치다. 2008년 4분기(-3.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최저치다. 속보치와 비교하면 건설투자와 총수출이 하향 조정됐다.
국민의 실제 호주머니 사정을 반영하는 실질 국민총소득(GNI) 역시 동반 하락했다. 1분기 실질 GNI는 전분기보다 0.3% 떨어졌다. 올해는 1분기부터 충격적인 경제성적표를 받은 셈이다.
전체적인 내용도 좋지 않다. 통상적으로 1분기에 설 명절 등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마이너스 성장은 한국경제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2016년 4분기 GDP부터 올해 1분기까지 살펴보면, 마이너스 성장(전분기 대비)은 2017년 4분기와 올해 1분기 2차례밖에 없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플러스 방어를 했다는 얘기다.
2017년에는 4분기에 -0.2%를 달성했어도 직전 3분기에 1.4%의 깜짝 성장에 힘입어 연간 3.1%라는 호성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첫 스타트부터 마이너스다. 이런 추세라면 2017년처럼 하반기에 1.4%라는 깜짝 성정표를 받더라도 3%는커녕 2%대 후반 방어도 어렵다.
2012년부터 역대 2분기 평균 GDP가 0.5~0.6% 수준이라는 부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올해 2분기에 반전을 꾀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연간 경제성장률 2.5%를 달성하려면 분기별 성장률이 2분기엔 1.3%, 3분기와 4분기도 각각 1.0% 안팎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2분기에 1.3%를 달성한다면 이는 역대급 찬사를 받아도 될 수치다. 과연 지금과 같은 불확실한 형국에서 2분기 반전을 꾀할 수 있을까.
◆전략 부재 경제정책··· 또다시 단기대책 남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구조개혁에 고삐를 당겼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기반으로 경제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첫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2017년 경제성장률 3.1%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정부는 이런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내놨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2년 연속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했고, 최저임금 1만원 공략을 실현하기 위한 속도를 냈다.
그럼에도 문 정부 3년차에 주목할 성과를 찾기가 어렵다. 최저임금은 사실상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새로 구성된 최저임금 위원회는 보수와 진보가 적절하게 배분됐다. 박준신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속도조절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기업은 더 이상 정부 정책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용, 투자, 혁신 어느 하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투자를 하겠다고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기대치가 예전만 못하다.
급기야 정부는 개별소비세(개소세) 인하 연장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개소세는 이쯤 되면 연례행사라고 봐야 할 듯하다. 내수가 어려울 때 단기처방전 단골메뉴가 개소세 인하다. 매번 개소세 인사를 경기부양 카드로 쓰다 보니 당연히 효과는 갈수록 반감되고 있다.
개소세는 확실히 단기적 효과는 강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한시적 대책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수가 나빠지면 개소세 인하부터 생각한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는 2015년 9월 정부 개소세 인하 정책에 대해 “승용차나 대용량 가전제품의 경우 비교적 사용기간이 긴 내구성 소비재로서 소비 진작의 효과가 일회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한시적 세율 인하가 종료될 경우 오히려 소비가 감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의 경우 9월부터 12월 말까지 승용차에 대한 개소세 인하 기간이 종료된 이듬해 1, 2월 승용차 판매가 급감했다. 입법조사처는 “기업들의 사내유보 경향을 고려할 때, 판매이익 증가가 투자·배당·임금 증가 등으로 연결될지 여부도 불명확하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상반기 성장률 부진을 막기 위해 ‘조기예산투입’을 강행 중이다. 예산의 70% 안팎을 상반기에 쏟아부어 정책 성과를 내겠다는 의도다. 그럼에도 1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면 정책적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이 더 어려운데··· 장기불황 전조는 진행 중
정상적인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며 발전하는 것이 당연한 사이클이다. 평탄한 도로를 달리다가 가끔 터널을 만나는 것과 같은 셈이다. 터널이 전혀 없는 경제나 그런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이란 없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을 ‘오크타다미의 터널’로 부른다. 길고 짧은 터널이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산길에서 터널을 빠져나왔나 싶으면 수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터널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는 구간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터널 밖의 밝은 햇살을 받더라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한국경제가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인구구조, 노동력 감소, 경제성장률, 잠재 GDP, 인플레이션율, 저금리, 주택시장 침체 등 전반적인 움직임이 1990년대 초중반 일본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많고, 부와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 높은 청년실업률,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니 소득 불평등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구조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내년에 1%대 성장률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 모든 정황을 볼 때 총선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와 더불어 문 정부 4년차 레임덕을 우려한 관측인 셈이다.
그렇기에 문 정부로서는 올해가 물러설 수 없는 시기다. 경제정책은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평가 받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지금처럼 급진적인 체질개선은 오히려 많은 낙오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단점이 크다. 정부가 장기적인 저성장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주체들과 어떤 타협점을 찾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