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가 점증하는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등 EU의 재정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면서 '과다 재정적자 시정절차'(EDP)로 불리는 징계 조치를 권고했다.
EU 집행위는 작년 6월 포퓰리즘 정부 출범 이후 이탈리아가 연금 수령 연령을 다시 낮추는 등 성장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EU의 약속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채무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탈리아의 국가채무는 작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132.2%에 이른다. 이는 EU의 권고치인 60%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자, EU 내에서 그리스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것이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이날 "이탈리아는 작년에 국가부채를 GDP의 0.3%만큼 줄이기로 했으나 오히려 0.1% 늘렸고, 경제 구조 역시 악화하고 있다"며 "EU의 규정을 어긴 이상 징계절차 착수는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EU는 국가부채가 권고치를 초과하거나, GDP의 3% 이하라는 EU의 재정지출 제한을 넘어서는 회원국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거나, EU 지원금을 삭감하는 등 징계를 할 수 있다.
돔브로브스키스 부위원장은 "이탈리아가 부담하는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만 해도 전체 교육비에 맞먹는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은 거의 멈추다시피 한 상황"이라며 "향후 채무 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오늘 바로 징계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징계를 피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한 협의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며 향후 협상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설득력 있는 채무 감축 방안을 제시하면 징계가 철회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EU는 앞으로 2주에 걸쳐 회원국을 상대로 이탈리아에 대한 EDP를 발동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징계가 최종 결정되면 이탈리아는 최대 30억 유로(약 4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EU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극우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이탈리아는 EU의 지침을 거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살비니 부총리는 강경 난민 정책을 앞세워 지난 주 유럽의회 선거에서 34%가 넘는 표를 얻으며 동맹의 압승을 견인한 뒤 "실업난 해소와 경제 성장 촉진을 위해서는 회원국의 재정지출을 제약하는 EU의 낡은 규정을 뜯어고쳐야 한다"며 EU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 것임을 예고했다.
포퓰리즘 연정의 또 다른 구성원인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도 "이탈리아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세금 인하에 돈을 쓰길 원한다는 이유로 EU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