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시론] 한국경제, ‘外風’에 내어줄 살이 있는가

2019-05-3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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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 경제부장]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의 눈과 귀는 이들 국가의 힘겨루기 결말에 쏠리고 있다. 특히 한국경제는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 줄 수 없는 처지다. 누가 이기든, 누가 지든 그저 조용히 지켜봐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한국경제는 그동안 ‘외풍(外風)’에 시달려왔다. 물론 내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대외변수는 언제나 한국경제 성장률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언제부터인가 대외변수는 한국경제를 진단하는 데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한국경제 흑역사를 되짚어 봐도 외풍은 절대적 존재로 각인된다. 이런 외풍이 감지될 때마다 한국경제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이대도강(李代桃僵)’ 전략으로 위기를 넘겼다.

김종인 박사(전 국회의원)는 그동안 한국경제가 4차례 큰 외풍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때마다 우리는 이대도강 전략으로 생존을 이어갔다.

그는 “먼저 1969년 한국 경제에 찾아온 위기는 베트남 전쟁 참전을 통해 넘어간 바 있다.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여기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 위기는 1975년 1차 오일쇼크로 다가온다. 한국 경제는 중동붐을 통해 중동 오일달러를 채굴하면서 극복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셋째, 1985년 미국이 주도한 플라자합의 등 미국 경제 위기와 2차 오일쇼크 위기는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 절상으로 우리가 얘기하는 저금리·저유가·저환율 등으로 정의되는 3저 현상으로 극복한 바 있다.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는 1992년 중국과 수교 이후 연간 약 200억 달러가 넘는 중국 수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근대사로 넓히면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등도 한국경제가 ‘외풍’으로 인한 위기에 직면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즉, 한국경제는 대외변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21세기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를 읽어내고 전략적으로 국가 이해관계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조언을 간과해서는 지금의 저성장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21세기에 미·중 무역 갈등으로 촉발된 외풍은 1997년 이후 한국경제에 불어닥친 거대한 바람이다. 이번에도 희생이 없이는 위기를 극복하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어떤 희생으로 위기를 돌파할지도 관건이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50년 전과 똑같이 희생을 전제로 한 위기 탈출을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실적으로 최근 한국경제 흐름은 썩 좋지 않다. 미국과 일본·중국 등이 경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유독 한국만 부침을 겪는 모습이다. 이런 외풍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뒤따라야 한다.

우선 미국 연방준비은행장이나 재무부 장관 등 경제 관련 주요 관료들의 ‘입’은 늘 ‘시장의 반응’에 민감하다. 꽤 역설적이다. 시장이 이들의 입과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이들이 입을 열 때는 매우 신중하고,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주식시장이나 금리·고용·주택 경기 등 미시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늘 고민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경제 주요 기관들과 정책 결정권자들도 이처럼 시장에 대해 보다 정직하고 투명하게 중장기적 직관과 비전을 가지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 성장률은 이전과 같이 ‘외풍’을 막지 못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1%대로 급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3%대 성장률을 바라보기에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지난 50년간 버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한계에 왔다. 가까스로 한 발짝 내딛는 것도 버거운 모습이다.

대중국 수출과 반도체 호황에 의지해 왔던 한국경제는 '환율전쟁'으로 인한 금융충격까지 직면함으로써 실물과 금융, 주식시장과 부동산 등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에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 이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위기 대응을 위한 '플랜B' 준비가 절실하다.

사실 플랜B의 고민은 21세기 초입부터 고민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G2가 펼치는 경쟁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새로운 미래 경쟁력을 가질 것이며,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과 전술을 마련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경제는 인구만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구조가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성장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은 정치권과 정부, 기업들 모두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득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결국 ‘경제하려는 의지’ 혹은 ‘희망’ ‘꿈’을 되살리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이것은 1년 안에, 2년 안에, 혹은 5년 안에 이뤄질 문제가 아니다. 경제 정책이 중장기 시간을 두고 일관되게, 투명하게 시장과 소통하고 정책들을 성실히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경제 정책 성패는 경제주체들 간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국경제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경감하려면 기본기 배양은 필수인 셈이다.

경제를 예측하기 위해서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및 일본의 경제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또 중국이라는 새로운 경쟁상대국이 급부상함에 따라 한국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내야 한다는 점에 좀 더 절박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제란 생물은 결코 1~2년 안에 덩치가 커지는 괴물이 아니다. 10~20년간 성장기와 성숙기가 필요하다. 세대 간 소통과 변화를 위한 행동의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실패와 성공의 선순환 주기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발전을, 때로는 성장 기본경제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근본이다.

2015년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발간한 '축적의 시간'은 우리나라 과학과 제조업에 직면한 문제의 본질이 선진국 ​산업과 기술에 대한 추격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성장 중심의 한국경제가 변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 내용이 대외변수를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잠정적인 우리의 해답은, 산업 차원의 축적 노력으로는 선진국과 중국의 축적된 경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산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어 국가적으로 축적해 가는 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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