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가비상사태 선포...中기업 전방위 배제
미국 백악관은 15일(현지시간) 낸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정보통신 기술 관련 서비스를 보호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안보위험이 있는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 행정명령이 1997년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IEEPA는 미국이 국가 안보상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발생할 사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경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안이다.
수출제한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은 별도의 라이선스 없이는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금지된다는 뜻이다.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정부기관을 넘어 일반 기업까지 화웨이 제품을 사용할 수 없게 한 것으로, 사실상 금수조치를 취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번 행정명령을 계기로 활용 기회가 더욱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인 민주당도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마크 워너(버지니아·민주) 상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필요한 조치이며 화웨이와 ZTE가 미국과 동맹국의 통신 네트워크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중국 5G 선점 두고 조바심"...미·중 갈등 고조
미국 정부가 화웨이 등 중국 통신기업을 압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3월에는 ZTE에 벌금폭탄을 던졌다. 지난해 8월에는 화웨이 제품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사용된다며 행정부와 의회가 화웨이 제품 정부조달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과 일본 등 동맹국에도 동조해달라고 촉구했다.
문제는 행정명령이 나온 시기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1년 넘게 검토되고 있었지만 거듭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1년 이상 묵혀뒀던 법안을 꺼낸 데는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복안이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5G 분야에서 눈에 띄는 발전을 거두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델로로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각국 5G 설비 투자 비중을 비교한 결과 중국 화웨이가 28.6%로 가장 높았다. 핀란드 노키아(17%)와 스웨덴 에릭슨(13.4%)이 그 뒤를 이었다. 5G 관련 특허건수도 중국이 월등한 수준을 보였다.
독일 특허 데이터 베이스 기업인 IP리틱스는 지난 3월 현재 표준필수특허(SEP) 출원건수에서 중국이 34%로 최고 점유율을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SEP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 대체할 수 없는 기술특허를 가리킨다. 2위에 오른 핀란드 노키아(13.82%)와도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반면 미국은 14%로 4G에 비해 2%포인트 낮아졌다. 4G 분야에서는 시장을 주도해온 미국이지만 5G 분야에서는 중국에 되레 특허 사용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무역 불균형과 관련해서 들이밀었던 관세폭탄이 효력을 낼 수 없다.
화웨이는 향후 미국 정부의 제재가 최종 시행되면 법적 다툼에 나설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최근 진행된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된 걸 감안하면 조만간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정보통신 부분에서는 간극을 좁히기 어려울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라지브 비스워스 IHS마킷 아태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결정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중국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차이나모바일의 미국 서비스 개시 신청을 거부한 지 며칠 만에 나온 것"이라며 "미·중 기술전쟁과 미·중 무역전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한 하방 위험이 높아진 만큼 추가부양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