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ムクゲ)나무는 부상(扶桑)나무다. 히노마루(日の丸) 품종의 무궁화는 멀리서 보면 일본의 국기처럼 보이는데 이게 진짜 일본의 국기다. "-야후 재팬
"부상(扶桑) : 동해 가운데 있다는 신목(神木)으로 일본을 가리킨다." -『선조실록』 1595년 2월 10일(음력)
∙"부상(扶桑 무궁화나라 일본)과 근역(槿域 무궁화지역 한국)을 어찌 다르다 논하리오." -소네 아라스케 조선통감 1909년 7월 5일
◆ 부상(扶桑)은 무궁화 나무로서 일본을 지칭한다.
일본이 왜 무궁화를 좋아하고 이를 한국의 나라꽃으로 은밀히 신분 세탁하는 작업을 했을까?
필자의 오랜 의문에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이 대답하고 소네 아라스케(曾彌荒助, 1849~1910) 조선통감이 이를 재확인했다.
우선 「조선상고사』 ‘구미호와 오제’의 문구이다. 단재는 다음과 같이 흔히 일본을 지칭하는 부상(扶桑)이 무궁화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나무 이름은 부상(扶桑)이라 한다. 또 일명 무궁화 나무라고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상을 뽕나무의 일종으로 아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무궁화는 신성한 나무인데 그 잎이 뽕나무 비슷하다 하여 부상이라 일컫는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부상은 우선 5색이 나지 않고 오직 무궁화만 5색이 나니, 천지간에 나서 천궁 아래서만 자라난다. 바람·비·눈·서리·벌레·새·짐승, 또는 사람들의 침략도 받지 않으므로 다섯 가지 정기를 독차지하였으니, 능히 5색을 갖추어 변치 않는 것이다. 오제의 신이 이를 사랑하여 늘 여기 와 노는데 실로 신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그 자리를 알지 못하며 비록 안다 해도 그 신을 능히 부릴 수 없나니, 그 신을 이미 알고 그 신을 능히 부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다음은 일본의 무궁화 야생 군락지로 유명한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소네 아라스케 조선 통감의 시구다.
1909년 7월 5일 초대 조선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돌아가며 함녕전에서 고종을 알현했다. 고종이 시제를 내렸다. 이토히로부미, 모리오노리(森大來), 소네아라스케(曾彌荒助), 이완용이 연회장에서 다음과 같은 합작시를 지었다.
단비가 처음내려 만사람을 적셔주니(甘雨初來霑萬人-이토)
부상(일본)과 근역(한국)을 어찌다르다 논하리오 (扶桑槿域何論態 - 소네)
함녕전위에 이슬빛이 새로워지니 (咸寧殿上露革新 -모리)
두 땅이 하나가 되니 천하가 봄이로다(兩地一家天下春 - 이완용)
소네 아라스케 조선통감이 말한 부상과 근역은 어디이며 무엇인가?
◆부상국 일본왕은 조선을 대국으로, 조선의 국왕을 황제로 존칭했다
먼저 멀리갈 것 없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의 『한국고전용어사전』을 찾아 보자.
“부상(扶桑):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동쪽 바다의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신성한 나무. 또는 그 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을 지칭할 때에도 쓰인다.”
멀리 갈 것 없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일본을 가리켜 일본, 왜국(倭國), 부상(扶桑), 일역(日域) 순으로 불렀다.
키 작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의미의 왜국은 『삼국사기』 45회, 『삼국유사』 8회, 『고려사』 6회, 『 고려사절요』 3회, 『조선왕조실록』 239회 게재되어 있다.
무궁화 나무 나라인 ‘부상’은 『고려사』 6회, 『조선왕조실록』 97회 나온다. ‘부상’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일본의 별칭은 해 뜨는 지역이라는 뜻이지만 국가답지 못하다는 의미도 담긴 ‘일역’이다. 『고려사』16회, 『고려사절요』2회, 『조선왕조실록』에 29회가 나온다.
즉 ‘부상’은 ‘왜국’ 다음으로 많이 불린 일본의 흔한 별칭이었다. 일본 스스로 고려와 조선에 보내온 국서나 사신들을 통하여 ‘부상’이라고 칭했다.
"인월(引月)에서 공격하여 부상(扶桑) 〈일본〉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고려사』, 세가 제45권 1390년 4월 1일(음)
"일본은 부상(扶桑)에 나라를 세우고, 정치는 간단하고 백성은 순백한지라."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425년.5월.11일.(음)
"부상(扶桑)국왕이 특사를 파견 조공을 바치며 원조를 청했다."
- 「조선왕조실록∙성종실록』 1479년 8월 24일(음)
"부상(扶桑) : 동해 가운데 있다는 신목(神木)으로 일본을 가리킨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595년 2월 10일(음력)
『조선왕조실록』 등 역대 한국 대표 사료를 살펴 보면 16세기 이전 조선은 상국(上國)이었고 일본은 하국(下國)이었다. 일본은 자타칭 ‘부상’이라 불렀으며 조선을 대국으로 조선국왕을 황제라고 존칭하며 조공을 바치며 대국 조선의 원조를 청했다(「성종실록) 참조).
맨 처음 일본을 부상이라고 부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일본을 가리켜 왜국(倭國), 일역(日域), 부상, 군자국(君子國)등 순으로 불렀다. 『설문해자(説文解字)』 『한서위지왜인전(漢書魏志倭人伝)』 『산해경(山海経)』 『회남자(淮南子)』 『사기정의(史記正義)』 『송서(宋書)』 『양서부상국전(梁書 扶桑國傳)』 『삼국지(三國志)』 『송일본국승용귀(送日本国僧敬龙归)』 『태평어람 초사·구가·동군 (太平御览 楚辞·九歌·东君)』 등 무수한 중국의 문헌들은 그들 역사만큼 오래 널리 일본을 ‘부상’으로 불러왔다.
일본은 신화시대부터 자국을 가리켜 부상국이라고 했다.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 『속일본기(續日本記)』, 『부상약기(扶桑略記)』 등 나라(室町, 710~794)시대 출간 일본어 사전 『하학집(下学集)』부터 『절용집(節用集)』 『서언자고절용집(書言字考節用集)』 1900년 출간 『대일본국호고大日本国号考』까지, 사서와 사전 등 수많은 문헌에 자국을 부상으로 지칭해왔다. 790년 제작 <일본부상국도(日本扶桑国之図)>부터 1836년 제작 <대부상국고(大扶桑國考)』의 지도에도 자국을 부상이라고 표기해왔다.
◆무궁화는 부상화로서 진짜 일본의 국기
위와 같이 단재 신채호가 구명(究明)한 ‘부상=일본=무궁화’ 중 ‘부상= 일본’ 부분은 확인했으니 이제 ‘부상=무궁화’ 부분을 재확인해보자.
중국의 대표 포털 <바이두> 백과에는 “부상(扶桑)의 별명은 무궁화(木槿)、적근(赤槿)、불근(佛槿), 주근(朱槿)、홍목근(红木槿)、부상(桑槿)、송근(宋槿)...”으로 되어 있다. 또 중국을 대표 하는 한의학 서적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부상은 남방에서 생산되는 무궁화의 별종”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 포털 <야후재팬>을 살펴보자.
“무궁화는 부용 · 부상화(훗소우케) 홍촉규(紅蜀葵) 등과 같은 속의 아욱과의 낙엽 관목이다. 홍촉규(紅蜀葵)는 중국 촉(蜀) 지방에서 심기 때문에 촉에서 나는 아욱이라는 뜻의 촉규라는 이름이 붙었다. 생김새가 아욱 비슷하나 오색빛이 나는 꽃은 무궁화와 비슷하다.”
“무궁화(ムクゲ) 나무는 보통 높이 3~5m 정도로 자라는데 이게 바로 부상(扶桑) 나무다. 히노마루(日の丸)라고 불리는 품종의 무궁화는 멀리서 보면 마치 일본의 국기처럼 보이는 꽃이 있다. 진짜(本当) 일본의 국기다.”
끝으로 가장 직접적인 접근방법 식물학 학명으로 무궁화와 부상을 비교해보자.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 부상의 학명은 Hibiscus rosa-sinensis로 같은 아욱과 (科) 아욱 목(目) 같은 무궁화(Hibiscus) 족(族), 같은 무궁화속(屬)이다. 현대 일본의 각종 문헌은 ’부상‘을 부용(芙蓉) 또는 부용·부상화 식으로 살짝 뒤틀어 부르고 있으나 역시 무궁화와 같은 과· 목· 족·속의 식물이다. 부용학명은 Hibiscus mutabilis다.
◆일본은 왜 한국을 ’무궁화지역’이라 날조했을까?
“부상과 근역을 어찌 다르다 논하리오”
소네 아라스케 조선통감이 이런 고약한 시구를 읊은 13개월 이후 ‘근역’이라는 단어가 『조선왕조실록∙순종실록』 1910년 8월 29일 '대일본천황이 조서를 내리다' 의 문건 속에 ‘근역(槿域)’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근역(무궁화 지역)이 아니라 부상(무궁화 나라)국왕이 한국의 병탄조서를 내린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일로부터 '근역'이 됐다.
즉,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등 한국 역대 6대 대표 사서를 포함한 반만년 한국사에 ‘근역’이란 낱말은 단 한 자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신라말기 최치원(崔致遠, 857~미상)이 발해를 멸망시켜달라고 당 나라 조정에 보냈다는 문서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에만 자국 신라를 가리켜 '근화지향(槿花之鄕, 무궁화의 마을 이라는 뜻)' 이라 단 한건 뿐이다. 그마저도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후기의 판도 경상도 지역을 가리킨 것이다.
중국 현대 온·오프라인에 발견되는 '근역' 근화향 등은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헌을 역번역한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 부터 『조선왕조실록』까지 한국 역대 6대 대표 사서와 반만년 한국사 거의 모든 사료를 망라한 <한국사데이터 베이스>를 수차례 전수 분석 확인에 재확인 검증에 재검증을 거친 사실(史實)이자 사실(事實)이다.
따라서 무궁화 나라 부상 일본이 한국을 ‘무궁화지역(근역)’으로 변조한 목적은 무궁화의 한국의 나라꽃으로 신분세탁과정을 통하여 한국병탄과 내선일체 작업의 매개체로 삼으려는 제국주의적 행위로 파악된다. 이러한 목적외에도 한국과 중국, 유규 등 동아시아 주변 국가가 자국을 국가도 아닌 지역 ‘일역’으로 불러왔던 수모에 대한 복수의 의미도 적잖게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무궁화는 꽃나무로 변장한 일본의 국기이자 군기다. 일본인은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드는 대신 무궁화를 심고 가꾸고 노래하고 받들고 사랑하며 항상 심신에 새긴다. 한편으로 타국으로 은밀한 확산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