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한 은행가가 지진 발생 4일 만에 은행 문을 열었다. 심지어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는 지진 발생 시 미리 챙겨둔 은행의 예금 8만 달러 중 1만 달러를 마차에 싣고 혹시나 모를 약탈에 대비해 그 위에 과일과 채소를 쌓아 위장한 후 샌프란시스코 노스 비치로 향했다.
그곳에서 배럴통 두 개를 책상 삼아 문을 연 간이은행은 고객들에게 소액 대출을 제공했고, 은행 돈은 도시 재건에 투입됐다. 덕분에 사람들은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었는데, 이후 빌려준 돈들은 잘 상환됐을 뿐만 아니라 그해 12월 은행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이 은행은 자산이 두 배로 늘어 있었다.
이 은행가는 바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설립자인 아마데오 피터 지아니니(1870~1949)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가 미국 내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위해 1904년에 세운 '뱅크 오브 이탈리아'가 그 전신이다. 20세기 초 은행들은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전유물에 불과했는데, 지아니니는 여기에 도전장을 내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서민 은행을 표방했다. 당시에도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고리대금업자였고, 월 대출이자는 20%에 달했다.
그러나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서민들에게 은행 문턱은 높고, 고금리에 허덕이며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서민들은 먹고살기 팍팍하고 여기저기에서 힘들다는 이야기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은행들은 소위 'Wealth Management(WM, 자산관리)'라는 부의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부의 관리란 결국 '어떻게 하면 부를 더 늘릴 수 있나'의 문제지만, 많은 서민들은 '부(富)'보다는 '부채(debt)'에 노출된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채 관리는 누가 해줄 것이며, 서민들의 숨통을 틔워줄 순환과 분배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이에 대한 고민은 정부의 포용적 금융 정책으로 이어졌고, 전북은행 또한 정부 정책이 본격화되기에 앞서 포용적 금융을 위해 준비하며 관련 시장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상환의지가 있어도 제대로 된 심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은행에서 충분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고객들조차 고금리 대출로 인해 부채를 갚아도 원금이 줄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서민과 취약계층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전북은행은 지난해 '따뜻한 금융 비전 선포식'을 시작으로 전주에 따뜻한 금융클리닉센터를 오픈하고, 대부분의 은행권이 자산관리 고객들에게 집중할 때 고객들의 부채관리(Debt management)에 눈을 돌려 신용사회 정착과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고객의 상환의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20%대의 고금리에서 10%대 중금리로 전환시켜 금리 절벽을 해소하고 이를 통한 원금 상환이 이뤄지도록 유도해 신용 등급을 높일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모한 도전도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이러한 진정성이 고객들에게 전달되면 은행의 브랜드 가치의 상승은 물론 수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금융은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신용등급 같은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고객의 미래 가치를 볼 줄 아는 혜안으로 상생의 경제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100여년 전 지아니니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도 은행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인생의 새로운 봄날도 함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