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한달 뒤인 1919년 4월. 8명의 여성이 애국부인회라는 이름으로 문서 하나를 배포한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다. 선언서를 작성한 이들은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이름들이다. 중국 간도와 노령(러시아)에 뿌려진 이 선언서는 당시의 다른 문서들과 달리 국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글로 쓰여 있다. 여성적인 애절함이 녹아들어간 비장함이 사뭇 마음을 사로잡는 명문장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했거든, 하물며 수천만 생명이 억울해하고 불평하는 하소연을 지극히 공평무사하신 상제께서 통촉하심이 없으리오. 고금에 없는 세계대전의 끝에 민본주의로 만국이 평화를 앞장서서 주장하는 오늘에 이르러 감사하신 남자사회 곳곳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만세 소리에 엄동설한의 반도 강산이 봄바람을 만나 만물이 소생할 시기에 이르렀으니 아무쪼록 용기 위에 용기를 더하고 열성에 열성을 더하여 그 결실을 거두심을 피끓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바이다."
선언서는 해외 여성들의 사례를 인용하기도 한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가 본받을 선생을 들어 말하자면, 서양의 스파르타라는 나라의 '사리'라는 부인을 들 수 있다. 부인은 농촌 태생으로 아들 여덟을 낳아 국가에 바쳤더니 전장에 나가 승리하기는 했으나 불행히 여덟 아들이 다 전사했다. 부인은 그 참혹한 소식을 듣고 조금도 슬퍼하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며 말하길 '스파르타야, 스파르타야. 내 너를 위하여 여덟 아들을 낳았다.'라고 했다더라."
또 "간과 창자에서 솟는 눈물과 가슴 깊이 우러나는 붉은 마음으로 우리 사랑하는 대한동포에게 엎드려 고하노니 동포, 동포여! 때는 두 번 이르지 않고 일은 지나면 못 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라며 당시 여성들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언서 아래에 서명한 이는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이정숙 선생이다.
이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서울 광화문 세종미술관 2관에서 열리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특별전(‘공감·기억 그리고 미래’)에서 관람객들에게 우리말과 영어 인쇄물로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선언서는 여성 독립활동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한편 오는 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과거 사료를 단순 나열하는 것을 넘어 영상, 음악, 조형물과 결합해 관객의 관심을 돋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