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미국 월가가 기업들의 순이익 감소에 따른 실적침체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적침체는 순익이 2분기 연속 감소하는 걸 말한다. 경기침체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실물경제학자들 모임인 전미기업경제협회(NABE)가 최근 실시한 기업환경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58%가 임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 가격 인상으로 늘어난 비용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겼다고 답한 기업은 19%에 불과했다.
FT는 임금뿐 아니라 운송, 원자재 비용 등의 상승이 기업들의 실적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기업들은 이미 올해 실적 전망치를 대거 낮췄다. 로리 칼바시나 RBC캐피털마켓 애널리스트는 미국 뉴욕증시 대표지수인 S&P500 상장기업 가운데 올 들어 실적 전망치를 하향조정한 곳이 절반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평소 18%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비관론이 부쩍 거세졌다. 기술, 소재, 에너지 업종의 조정폭이 특히 컸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S&P500 기업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5.1% 늘겠지만, 순익은 1.7% 감소할 전망이다.
팩트셋 관측은 더 비관적이다. 같은 기간 S&P500기업들의 순익 감소폭이 3.7%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지난해 12월 말 3% 넘는 증가세가 예상됐던 데 비하면 급격한 반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S&P500기업들이 1분기에 예상대로 순익 감소를 겪으면 2016년 2분기 이후 처음이 된다고 설명했다.
리피니티브는 다만 S&P500 기업들이 실제로 실적침체를 겪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중소형주들은 몰라도 대기업들은 침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팩트셋은 대형주의 순익 증가세가 전보다 꺾이겠지만, 올해 1분기에는 전년동기대비 3.8%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콧 렌 웰스파고 선임 글로벌 증시 투자전략가는 미국 경제는 안정적으로 보이는데, 세계 경제의 성장둔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팩트셋이 취합한 유력 이코노미스트들의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2.4%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다. 미국 다음으로는 캐나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 1.2~1.5%, 이탈리아와 일본이 각각 0.2%, 0.9%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1분기 실적쇼크 우려를 뒷받침하는 비관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이날 현재 미국의 1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1.3%(연율 기준 전분기 대비)로 본 게 대표적이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2.6%였다. 애틀랜타 연은의 실시간 성장률 전망 모델(GDP나우)에 따른 1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이달 중순 한때 0.2%까지 떨어졌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같은 기간 미국 경제 성장률을 0.4~0.7%로 내다봤다.
미국 경제를 둘러싼 불안감은 최근 채권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 22일부터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3개월물 금리를 밑돌기 시작한 것이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대표적인 경기침체 전조다. 통상 18개월 뒤 경기침체가 닥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은 200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해 미국 경제를 가장 정확히 예측한 이코노미스트로 꼽은 이코노믹아웃룩그룹의 버나드 바우몰은 미국이 오는 2021년 1분기부터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바우몰이 참여한 WSJ의 최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는 2020년을 미국 경제의 침체 시점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