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窓으로 경제보기⑩] 이종범 사례를 통해본 한국 경제의 문제점

2019-03-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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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인 스포츠 칼럼니스트]




재경부 차관과 금융위원장을 지낸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는 최근 조찬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과도한 가계부채(2018년 말 현재 1,535조) ‣산업의 경쟁력 상실 ‣저출산, 고령화의 함정 ‣청년 실업과 고용 절벽 ‣경제 양극화 ‣노동, 공정 거래, 기업 규제 등 경제의 갈등 구조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향후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는 걸까. 김 대표는 기업들이 마음놓고 경영을 하도록 정부에서 투자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각종 규제를 풀고, 노조의 지나친 경영 간섭을 배제하면 힘껏 투자를 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의 기업들, 특히 대기업은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1960~80년대 개발경제로 고속성장을 이룰때 대기업들이 근로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환경파괴를 일삼으며 과도한 이익을 취한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에 세계경제 10위권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대기업의 눈부신 기술 개발과 수출 입국의 노력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프로야구가 낳은 최고의 타자겸 수비수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현 LG코치)을 대기업에 비유해보자. 이종범은 입단 2년차인 1994년 타율(0.393), 안타(196개), 도루(84개), 득점(113점)부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며 천재성을 맘껏 발휘했다. 특히 3할9푼3리의 타율은 신(神)의 경지에 올랐다는 극찬을 받았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 백인천이 전무후무한 4할1푼2리를 기록했지만, 기록의 가치로는 이종범에 비해 떨어진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산전수전을 겪은 백인천이, 갓 프로 유니폼을 입은 실업팀 출신 투수들을 이리저리 갖고 놀며 이룬 4할대 타율은 프로야구가 궤도에 오른 13년차 시즌에 이종범이 일궈낸 기록과는 수준차가 날 수밖에 없다.

하여간, 이종범은 한국 최고의 타자라는 명예로운 간판을 달고 1998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한다. 그러나 이종범은 3시즌 동안 평균 타율 2할6푼대의 저조한 성적을 남기고 쓸쓸히 귀국했다. 이종범은 왜 일본 프로야구 적응에 실패했을까? 이종범은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재질을 발휘해 광주서림초-충장중-광주일고-건국대를 거치며 감독의 플레이 간섭을 거의 받지 않았다. 다른 선수와 달리, 감독은 타석의 이종범에게 사인을 내지 않아 자유롭게 타격을 할수 있었으며 도루 역시 스스로의 감각으로 감행을 했다. 프로 입단해서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관리야구를 교과서처럼 받들고 있고 주니치의 호시노 감독은 철저한 신봉자였다. 호시노 감독은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해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런 호시노 감독밑에서 이종범의 천재적인 야구는 빛을 발할 수가 없었다. 이종범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원형탈모증까지 걸려 한국 프로야구로 복귀하고 말았다.

정부가 호시노라면 대기업은 이종범이다. 정부가 호시노처럼 지나친 관치(官治)를 고집한다면 대기업은 이종범처럼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를 大타자로 키울 것인가, 평범한 타자로 머물게 할것인가? 정부의 과감한 정책 전환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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