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스페셜 칼럼] '푸른 하늘' 보려면 낡은 패러다임 버려라

2019-03-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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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교수]


환경부가 경유차(1995년 시작)‧중국발(2007년)‧석탄화력(2017년)에만 매달리는 사이에 미세먼지가 세계 최악으로 변해버렸다. 지난 1월 14일 국내 관측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초미세먼지가 3월이 시작되면서 최악으로 치솟았다. 청정지역이었던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이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잿빛 먼지에 시달렸다. 숨을 곳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었다. 이번에도 우리를 살려준 것은 정부가 아니라 북풍이었다. 대통령의 엄중한 지시에 마지못해 현장을 기웃거리던 장관들도 깨끗한 북풍과 함께 쾌적한 집무실로 돌아가 버렸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장관들

‘푸른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겠다던 대선 공약은 처음부터 믿을 것이 아니었다. 미세먼지의 주무부처를 최소한의 전문성·공직관도 갖추지 못한 무지랭이 장관들에게 맡겨버렸을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깨끗한 원전을 세워놓고, 초미세먼지를 마구 내뿜는 분산형 LNG에 매달렸던 탈원전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오로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장관과 관료들에게 창의성과 상상력은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장관의 역할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 형편이다. 대통령에게 전문적·합리적·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장관의 역할이라는 상식적인 공직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만화책 수준의 어처구니없는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공강우와 공기정화기는 자연의 거대함을 고려하지 못한 어설픈 발상이다. 150그램짜리 요오드화은(미세먼지)과 좁은 실내에서도 충분한 성능을 보장하기 어려운 공기청정기로 자연과 맞서겠다는 발상은 창의적이 아니라 무모한 것이다. 공기청정기 산업에 대한 투자로 내수경기를 살려보겠다는 의도였다면 또 모를 일이다.

과거 회귀형 정책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내놓은 경유세 인상도 현실과는 거리가 먼 선무당의 정책이다. 내년 총선과 한시적 유류세 인하 혜택 종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경유세 인상은 정치적으로 무모한 도박이다. 미세먼지가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들을 잡는 정책이고, 가짜(탈세) 경유의 유통을 부추기는 엉터리 대안이다. 겨울 내내 계속되던 국제 저유가 추세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차량 2부제,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 노후 석탄화력발전 조기 폐쇄도 낡은 패러다임이다. 경제를 위축시키고,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대안은 21세기에 맞지 않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뒤덮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다.

‘노후’ 차량과 석탄화력 중심의 대책도 섣부른 것이다. 연식이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퇴출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든 노인 중에도 건강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유지‧보수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은 ‘불량’ 차량과 화력발전소를 찾아내서 관리하겠다면 또 모를 일이다.

배출구 중심에서 벗어나야

과거의 시커먼 매연과 스모그는 배출구가 분명했다.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자동차 배기구와 공장‧발전소의 굴뚝만 관리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995년부터 매년 2천억의 예산을 쏟아 부었던 환경부의 ‘대기질 개선사업’이 그런 시도였다. 1960년대부터 대도시의 주민들을 괴롭히던 시커먼 매연과 스모그는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중국이 지난 10년 동안 대기질을 43%나 개선할 수 있었던 것도 배기구 중심의 대책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반도와 중국 북부에서부터 중국 중남부·동남아·인도·중동·아프리카 서해안에 이르는 중‧저위도의 광활한 지역에 거대한 ‘먼지 벨트’가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기후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서 먼지 발생 양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이제는 미세먼지 발생 지역이 대도시·산업지대 중심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 한반도의 상황은 더욱 극적이다. 경제난으로 황폐화된 북한 전역과 겨울 농사를 포기해버린 남한의 농지도 미세먼지 취약 지역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검은’ 배출구 먼지가 아니라 ‘흰색’ 날림(비산)먼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환경부는 미세먼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날림먼지를 통계에서 의도적으로 제외시키고 있다. 물론 경유차와 화력발전에 대한 관리는 계속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유차를 완전히 퇴출시킬 수는 없다. 인구밀집 지역에 초미세먼지 폭탄을 쏟아내는 분산형 LNG도 경계해야 한다.

중국발에 대한 인식 개선

중국발 미세먼지가 어제오늘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중국 북서부 건조지대에서 발생한 황사는 서풍이 아니라 북풍을 타고 날아온다. 중국의 본격적인 산업화로 서풍을 따라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중국발 미세먼지가 사시사철, 24시간 날아오는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미세먼지를 최악의 경우로 한정해서 대응해서는 안 된다.

미세먼지에 국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업지역의 먼지와 황사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세먼지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중국과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이고 우호적인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 탓만 하다가 정작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놓쳐버리는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인구밀집 지역에서 낮은 수준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목표로 하는 유럽 선진국의 대책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광활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엄청나게 발생하는 ‘흰색’ 미세먼지를 잡을 새로운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배출구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40년 동안 사고 한 번 없이 안전하게 관리해왔던 깨끗한 원전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다시 찾아온 미세먼지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11일 오전 서초구 잠수교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일대가 뿌옇게 보이고 있다. 2019.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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