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눈]나라가 망했는데, 누군가는 죽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2019-02-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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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첫 공개된, 1910년 자결한 황현의 절명시와 만해의 '매천선생' 읽어보니

# 2월19일부터 3월14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개최하는 '문화재에 깃든 100년전 그날' 특별전에서는, 국망의 현장에서 자결을 택한 황현이 죽음 앞에서 썼던 생생한 필치가 실물로 공개된다. "나라를 잃은 날에 선비 하나 쯤은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 선비 하나에 스스로를 택한 그의 '절명시'다.

여기에 황현의 순국에 감동해 만해 한용운이 써준 시 '매천선생'도 진본이 나온다. 그간 잘못 알려졌던 시 구절들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이 귀한 자료들은 황현의 후손들이 100년여 동안 소장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전시회는 문화재청 주관으로 열린다. 이 행사를 계기로, 매천의 절명시와 만해의 '매천선생'을 새롭게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라가 망했다. 1910년 8월29일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완전하게 국권을 빼앗겼다. 나라의 통치권을 일본에게 건네주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맺은 최악의 국치일이었다.
  나라가 망했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이가 있었다. 혼란의 경계에서 눈치를 살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망했을 때, 나라가 망한 판국에 그래도 그것에 책임을 지고 죽음을 택하는 선비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것이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의 품격이 아니겠느냐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매천 황현(1855~1910)이 바로 그 사람이다. 더덕술에 아편을 타서 죽을 준비를 하며, 그는 이 시를 남겼다.
 

[2월19일부터 열리는 '문화재에 깃든 100년전 그날'에 공개된 매천 황현의 절명시.]



亂離滾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幾合捐生却未然(기합연생각미연)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曾無支廈半椽功(증무지하반연공)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불시충)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當時愧不躡陳東(당시괴불섭진동)

난리에 흘러흘러 오다보니 백발 시절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했건만 아직 못했도다
오늘 진실로 벌어진 일에 대처할 수가 없으니
바람 앞 등불 깜박여 푸른 하늘 비추는 꼴

짐승들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렸네
이 조선 땅이 이미 가라앉았도다
가을 등불 앞에서 책을 덮고 역사를 돌이키니
세상에서 지식인 노릇 하기 어렵구나

일찍이 행랑채 서까래 반쪽의 공도 없었으니
다만 어진 태도이긴 하나 충성을 한 건 아니다
끝맺음이 마침내 몽골 침략 때 자결한 윤곡(宋)을 겨우 따를 수 있을 뿐
때를 당하여 직언을 올리고 죽은 진동(宋)을 뒤쫓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매천 황현의 <절명시>

 

[2019년 '문화재에 깃든 100년전 그날' 전시회에 공개된, 만해 한용운의 '매천선생'시.]



만해 한용운(1879~1944)은 황현의 순국에 깊이 감동했다. 4년 뒤인 1914년 추모시 '매천선생'을 써서 황현의 후손에게 전했다.

就義從容永報國(취의종용영보국)
一瞋萬古劫花新(일진만고겁화신)
莫留泉坮不盡恨(막류천대부진한)
大慰苦忠自有人(대위고충자유인)

조용히 옳음을 이루니 영원한 보국(報國)이로다
만고에 눈 한번 부릅뜨니 시들지 않는 꽃이 피었도다
저승에 머물러 원한을 끝없이 계속하지는 마오
괴로운 충혼을 크게 위로할 사람이 있소이다

                                               만해 한용운의 '매천선생'

119년전의 일이, 지금 우리에게 닥쳐왔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분노와 공포는 말할 나위 없겠지만, 많은 이들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구차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영위해나갈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100년여 전의 황현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무엇이 있다. 모두가 죽음으로 항거할 수는 없지만, 나라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 그 뜻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황현의 나라가,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그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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