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方人語]
▶경주 최부자로 불린 최준은 은밀히 백범 김구에게 독립자금을 댔다. 최준의 동생 최윤은 총독부 중추원 참의 벼슬을 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조사했지만, 사소한 친일행위도 없었다. 일제 벼슬을 방패 삼아 당국을 안심시켜 형의 독립운동을 도운 ‘집안의 희생양’이었다. ▷'고종황제의 대신(大臣)' 동농 김가진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임정고문이 된 초기 독립운동의 아이콘이다. 그가 이토의 생일날에 썼던 생일축하시 한 편은 동농의 친일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이 시는 17년 전 ‘조선과 일본의 평화관계’를 맹세했던 이토와 동농의 화답시(和答詩)를 읽어야 이해되는 시다. 이 시를 환기시키면서 이토의 변심을 추궁하고 있기 때문. ▷100년의 대한민국 역사도 이제 '디테일'을 읽어낼 때가 됐다. 후세에서 피상적이고 관성적인 독법으로, ‘친일’ 로 섣불리 낙인 찍어온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國>
[full text]
신라 원효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딸인 요석공주가 사는 요석궁에 사흘을 머물렀고 이들 사이에 천재 설총이 태어난다.
경주 요석궁터에는 한정식 전문점 ‘요석궁’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의 전통가옥이기도 하다.
최부자로 불린 최준(1884~1970)은 신라 최치원의 후손으로 ‘2만석 이상 재산을 모으지 말고, 과객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말며, 흉년에 땅을 사지 말고, 사방 100리에 굶어죽는 이가 없게 하라’는 가훈을 실천한다. 그러면서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를 통해 백범 김구에게 독립자금을 전달했다.
최준의 동생 최윤은 총독부 중추원 참의 벼슬을 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지만, 사소한 친일혐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일제가 주는 벼슬을 방패로 삼아 그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하여, 형이 은밀히 행하고 있는 독립운동을 도운 ‘집안의 희생양’ 역할을 했다.
국망의 시절 고종황제의 일본 외교관과 대신(大臣)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뛰었던 동농 김가진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고문이 된다. 고종이 이토에 퇴위당한 뒤 이토의 생일날에 썼던 생일축하시 한 편은 동농의 ‘친일’ 혐의를 부른다.
그러나 이 시는 17년 전 ‘조선과 일본의 평화관계’를 맹세했던 이토와 동농의 화답시(和答詩)를 거론하며, 이토의 변심을 추궁하는 속뜻을 담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100년의 대한민국 역사도 이제 '디테일'을 읽어낼 때가 됐다. 일제가 목을 조여오던 시절에, 고위관료를 역임한 대한제국의 지도자가 우회적이나마 의분(義憤)을 표현한 이 시를, 후세에서 피상적으로만 읽어 ‘친일’ 혐의의 증거로 채택하는 건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