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늘어나는 데이트 폭력, 원인은 무엇일까?

2019-03-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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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판단기준 '피해자다움'

1. 법제도의 미비

최근 기사를 보다보면, 흔히 않게 데이트 폭력 기사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법률 조항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데이트 폭력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기에 제3자가 판단하거나 끼기에는 애매하다고 보는 인식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데이트 폭력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법적인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데이트 폭력에 관한 피해를 보장해주지 않으니 피해자들도 고소할 수 없고, 처벌에 대한 명확한 법률이 없으니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받고,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미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다보니 우리 사회에 데이트 폭력이 만연하게 되고,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분위기는 심지어 피해자들도 자신이 피해자인지, 가해자들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데이트폭력은 특례법이 없으므로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법률에 따라 고소를 하여야 하는데, 그 중 많은 죄명이 ‘강간죄’입니다. 우리나라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하에서는 강제추행, 강간상해/치상, 강간살인/치사 등의 죄를 규정하고 있으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서도 일정한 유형의 강간죄의 형량을 가중하고 있습니다.

강간의 정의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는 '남성성기의 여성성기에의 강제적 몰입'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고 보는 것이 판례와 학계의 일치하는 견해라는 것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부분일 것입니다.

강간죄를 규율하는 기본 조항에 해당하는 형법 제297조를 가만히 살펴보면,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단순히 '폭행 또는 협박'으로만 되어 있어 무엇이 강간죄를 구성하는 '폭행 또는 협박'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건을 재판하는 법원의 몫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으로서 판례가 요구하는 폭행·협박의 정도가 무엇인지 또 이와 관련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판례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아래의 판례들을 찾았습니다.

(2) 판례가 생각하는 강간의 모습

1) 폭행과 협박의 정도

강간죄는 본질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관계, 즉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인데 ‘의사에 반하여’를 어찌 판단하는 지에 대해서는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판례는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폭행 또는 협박이 존재할 뿐 아니라 그 정도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하고 있고 폭행·협박이 그러한 정도였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합니다.

2) 판단 기준
가해자가 강간 당시 '최협의'의 폭행 또는 협박을 사용하였는지를 판단하는 판례들의 기준을 유형화한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 강간 발생 이전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 피해자와 가해자의 최초 접촉 상황
㉢ 강간 후 피해자의 태도
㉣ 강간 당시 주변인들에 대한 피해자의 구조요청 여부
㉤ 강간 직후 신속한 고소 여부
㉥ 피해자의 과거 품행, 성력

3) '피해자다움'
증인이나 물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은 강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범죄성립의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강간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가 '강간피해자답게' 행동하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또한 피해자의 경험이 배제된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피해자다움'을 상정하고 이에 맞춰 피해자의 행동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소위 ‘안희정 사건’등에게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강간피해자답지 않다고 보아 피해자의 진술을 믿지 않고 결국 강간죄를 부정한 판례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법원 2001도 4462 판례는, “채팅에서 만난 모르는 남자를 영어회화를 배울 욕심에 밤늦은 시간에 바로 만났다거나, 노래방에 같이 가면서 짐과 책 등을 가지러 숙소에 들어갔다 오자는 피고인 말을 믿고 의심 없이 따라 들어갔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거니와...”라고 판시하여 피해자가 밤늦게 모르는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로 인해 '의심스러운' 여성으로 평가하여 강간을 부정하였습니다.

또한, 대법원 2000도 5395는, “피해자가 여관을 나가면서 피고인에게 창피를 주는 내용의 욕설을 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에게 화를 내는 것은 피해자의 행동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임에도, 법원은 두려움에 얼어붙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등 법원이 생각하는 '피해자다움'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강간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 92도1405 판결은 “피해자가 강간을 당한 이틀 후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강간 범인이라는 피고인을 불러내어 30분 내지 1시간 동안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설사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이 피해자가 남편과 평소에 절친한 친구이고 성격도 얌전하던 피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것을 납득할 수 없어서 번민한 끝에 피고인을 조용히 만나 강간을 한 이유를 따져보기로 작정한 끝에 취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강간을 당한 피해자로서는 좀처럼 취하기 어려운 거동임이 경험법칙상 명백하다.”고 판시하여 피해자가 당시 자신의 심경을 상세하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사건 '이틀 후'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만났다는 것이 이틀 전 사건이 강간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대법원 91도546 판결에서는 “강간도중 시아버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점”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 피해자와 전화로 음담패설을 주고받기도 한 사이었던 피고인이 피해자 집을 찾아와 강간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시아버지에게 구호요청을 하지 못한 피해자의 상황을 판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데이트 폭력

데이트폭력은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이 개인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쳐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는 다시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가해자가 자신이 이룬 가정에서 가정구성원을 향해 폭력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폭력이 허용되는 사람 간의 관계로 왜곡된 애정관이 개인은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공격적 성향을 드러낼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한 잠재성을 생각할 때 데이트폭력은 예방되고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3.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해결 방안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음을, 가해자가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측면으로도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데이트성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성에 대한 피해자의 기존의 사고와 경험의 맥락 등에 따라 피해가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으며, 해당 상황에 얽혀있는 연애감정과 성적욕망, 사회적 압력 등으로 인해 즉각적으로 성폭력으로 의미화하고 문제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해자가 당시의 상황을 ‘두 사람이 합의한 성관계’로 왜곡하지 않도록 올바른 애정관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피해자가 상황을 ‘피해’로 인지하고 목소리를 내기까지 너무 늦지 않도록 피해자가 사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법제도와 수사기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사진=송혜미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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