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기업 화웨이와 이 회사의 멍완저우 부회장을 기술탈취 및 이란 제재 위반 등의 혐의로 28일(현지시간) 전격 기소했다. 30~31일 워싱턴 DC에서 예정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을 코앞에 두고 내놓은 조치다. 양국이 여전히 지식재산권 보호 및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 핵심 의제에서 이견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성의 있는' 양보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CNBC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화웨이와 화웨이 관계회사 2곳,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총 23개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워싱턴주 대배심은 미국 3대 이동통신사 T모바일의 영업비밀 절도 등 10가지 혐의로 화웨이를 기소했다. 화웨이가 T모바일의 휴대전화 시험용 로봇 ‘태피’의 기밀기술을 탈취해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주요 외신들은 이번 조치가 이번 주 워싱턴 DC에서 예정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 직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양국은 중국의 미국산 수입품 확대와 관련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으나,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두고는 여전히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게 관측통들의 중론이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화웨이 기소와 미·중 무역협상은 별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협상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기소가 이뤄진 데다 공소사실이 미·중 무역협상 의제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두 사안을 따로 떼어놓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는 두 사안이 별도로 진행되고 있으나, 중국이 기술강자로 떠오르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에 국제통상 규정과 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미국 수사당국은 화웨이의 기술절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명분이자 협상의 핵심 의제인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 매슈 휘터커 법무부 장관대행은 이날 "화웨이가 자사 이익을 늘리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산업정보를 훔치는 행태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또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화웨이가 미국 기업과 미국의 번영을 이끈 기본적인 경제원칙에 상충하는 사업 관행에 의존해왔다”고 비판했다. '화웨이'를 '중국'으로 바꾸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비난해온 내용과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국익에 부합하거나 미·중 무역협상에 도움이 된다면 멍 부회장과 관련한 법무부 사안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한 점을 상기시켰다. 화웨이 사태를 대중 무역협상의 협상카드로 인식해 왔다는 지적이다. 멍 부회장은 지난달 캐나다에서 미국의 요청으로 체포된 뒤 현재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 폭스뉴스는 미국 법무부가 29일 캐나다에 멍 부회장의 신병인도를 공식 요청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덕에 성장한 대표적 회사로 화웨이를 콕 집어 채찍을 휘두르면서, 중국이 이번 협상에 어떤 자세로 나올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로이터통신은 화웨이 사태의 전개 상황에 따라 양국이 얼마나 절실하게 무역 합의를 원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조치가 양국의 긴장을 높이고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전문가인 에스워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미국의 화웨이 기소로 미·중 양국의 최종 무역 합의 전망이 어두워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FT에 "양국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번 조치로 서로 협상에서 기존 입장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면서 "중국은 무역전쟁 재개를 피하고자 미국에 기꺼이 양보하려던 의지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낸 성명에서 "미국이 국가권력으로 표적 삼은 중국 기업들을 단속해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사업을 끝장내려 한다"며 "중국 정부는 미국의 화웨이 기소 뒤에 강력한 정치적 동기와 조작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