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란’ 우려 씻은 상조업계…“투명성 살려야 산업군 거듭”

2019-01-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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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99%, '자본금 15억원 상조사' 안착

“소비자 신뢰 회복, 장기 발전 고민할 때”

‘상조 대란’을 우려했던 자본금 15억원 증액이 큰 혼란 없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3년의 유예기간동안 자본금을 증액하지 못한 업체는 자연스럽게 퇴출 절차를 밟게 됐고, 업계는 우량 상조회사로 재편돼 건전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큰 고비를 넘긴 만큼 이제는 상조가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 잡고, 장례문화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장기적 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상조업계에 따르면 전체 약 5조원의 선수금 중 자본금 조건을 충족한 선수금 비율은 99%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본금 15억원 미만 상조업체에 가입된 소비자는 약 2만2000명으로, 전체 상조 소비자 540만명의 0.4%에 해당한다. 작년 3월 당시 피해자는 17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피해 규모가 크게 줄었다.

가입한 상조업체가 폐업 위기에 놓인 2만2000명의 소비자는 ‘내상조 그대로’(은행), ‘장례이행보증제’(상조보증공제조합), ‘안심서비스’(한국상조공제조합) 등 대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피해보상금으로 돌려받는 50% 금액으로 상위 업체 상조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는 제도로, 추가 비용 부담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 방지책으로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 투명성 확보, 소비자 신뢰 직결

[사진=아이클릭아트]


영세 상조업체의 등록이 취소되고, 선불식 상조업계가 재편됐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자본금을 증액하지 못한 업체는 후불식 상조 형태로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데, 후불식 상조는 법적 규제 근거조차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조업계 건전성 강화를 위해 추진한 정책이 정부 관리감독에서 벗어난 업체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상조업계 향후 발전방향은 영세‧부실 업체의 퇴출이 아니라 전체적인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철영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자본금을 15억원으로 늘리고, 부실 업체를 퇴출해도 결국 유사 업체가 등장하고, 후불식 상조를 통제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시장 및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회원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상조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 납부금은 50%가 은행 또는 공제조합에 예치된다. 이때 50% 예치금은 각 상조업체 등급에 따라 현금으로 전부 예치하든지 지급보증을 통해 대체할 수 있다. 은행 지급보증은 대형사 중에서도 몇몇 상위 업체나 활용 가능하고, 78개 업체는 모두 현금으로 예치금을 채우고 있다. 공제조합 예치의 경우 업체별로 담보율이 다르지만 평균 18~19%대를 유지 중이다. 조합사가 폐업해도 각 공제조합에서 부족한 금액을 채워 가입자 납부금의 50%를 보전해준다. 

현금이나 지급보증 등을 통해 50% 예치금 규정을 지키지 않는 ‘위법 업체’도 있다. 공정위는 작년 말 투어라이프, 길쌈상조 등 선수금을 제대로 보전하지 않은 업체를 적발해 냈다. 다만, 자본금 15억원 조건을 충족한 업체 중에는 선수금 예치 의무를 위반한 업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50% 선수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다. 현행법상 선수금 중 예치금 외 금액은 상조업체가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 타 법률에 의한 배임‧횡령 문제가 없다면 부동산에 투자하든, 여행 패키지 상품을 구성하든 제약이 없다. 폐업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영세 상조업체와 달리 대형 상조업체의 문제는 이 50% 선수금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배임, 횡령 등 일반법을 끌어와서 적용하지 않는 한 나머지 50% 선수금을 제재하기는 힘들다”며 “혐의가 과도하지 않는 이상 죄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수금 운용에) 어느 정도 구멍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 “장례 기피 문화 개선해야”

[사진=아이클릭아트]


상조 업계도 고충은 있다. 업체가 영업을 통해 고객을 모집하고, 선수금을 쌓아두면 이 금액은 회계상 부채로 잡힌다. 태생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부채비율이 높다 보니 소비자들은 상조업체를 불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고,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데도 차질이 생긴다.

상조업계 관계자는 “선수금 50%를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상조회사가 자금을 운용할 방안은 부동산이나 장례식장 사업 등 몇몇에 한정된다”며 “부채비율이 높아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상조업체 대표도 “상조업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회계적으로 부실하게 보이는 한계가 있다. 영업이익을 내기가 구조적으로 힘들다”며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보험처럼 상조를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조업과 장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장례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인 만큼 기피 문화에서 벗어나 고유 문화로서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각이다. 

장만석 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겸임교수는 “일본과 미국만 하더라도 장례문화와 상조 산업이 발전돼 있지만, 국내는 장례 관련 연구 논문이나 연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현재 상조업을 대표할 수 있는 협회는 없지만, 외국 사례를 참고해 국내 정서에 맞게 제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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