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해 2021년 9월까지 임기가 연장됐다. 올해 11월이면 역대 일본 최장수 총리가 된다. 지난 해 그를 괴롭혔던 사학 스캔들 위기를 극복하고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게 만든 것은 소위 '잃어버린 버린 20년'으로 불리는 경기 불황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게 만든 '아베노믹스'의 공(功)이 크다.
그러나 아베의 3연임이 확정된 직후 모든 것이 뒤틀리고 있다. 아베 정권 순항의 '시금석'이었던 오키나와 지사 선거 (지난해 9월 30일 실시)에서 정부.여당이 전면에 나서 지원했던 후보는 참패하고 말았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경제 성장세는 주춤하고 아베 정권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면서 올해 치러질 지방 선거(4월)와 참의원 선거(7월)도 걱정이다. 그가 숙원으로 꼽아온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도 연립 여당 내부 갈등으로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아베 정권이 큰 업적으로 내세웠던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도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마이너스 금리, 엔화 약세, 주가 부양 등 인위적인 부양책을 통해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지만 일본 경제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 (물가하락)의 악몽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이 장기간 유지하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은행이나 생보사 등 금융기관의 수익을 악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 목표인 2%달성이 요원한 상태에서 통화정책에 변화를 주기도 어려운 상태이다. 지난 5년 간 대규모 금융완화를 통해 아베노믹스를 견인하고 있는 일본 은행은 현재 국가 전체 GDP보다 큰 규모인 550조엔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은행이 너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자산을 보유하면서 자산 시장을 왜곡하다 보니 자산 매입을 중단하고 금리 정상화를 위한 미세한 조정이라도 들어갈 경우 세계 금융시장이 받는 충격은 엄청나기 때문에 출구 전략을 쉽게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기 회복은 2018년에 3분기(7~9월) 성장률은 연율 -2.5%를 기록하면서 벽에 부딪쳤다. 강진과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중간의 무역 전쟁 여파로 아시아 공급 망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금융 완화와 주가 부양 등으로 이룩한 아베노믹스가 외부 변수에 얼마나 취약한 모습 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10월 예정된 소비세 인상에 대한 후폭풍도 걱정이다. 지난 2014년 소비세가 5%에서 8%로 올랐을 때 일본은 경기 침체에 빠지기도 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과의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환율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면 경제 전반에 대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엔화 약세로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도 엔화가 강세로 반전될 경우 감소가 불가피하다.
아베 총리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새 헌법 시행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오는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는 최대 관문이다. 현재 중.참의원에서 연립 여당이 3분의 2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개헌선 확보에 실패하면, 아베 총리는 레임덕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 개헌을 통해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움직임은 한.일 관계는 물론 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최대 위협이다. 새해 벽두부터 한.일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배경에는 곤경에 처한 아베가 외부와의 갈등을 통해 내부 결집을 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우리 군 함정과 일본 초계기 레이더 추적 논란 역시, 자위대의 역할을 부각해 헌법 개정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와 함께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오는 4월 30일 매듭짓는다. 부친의 뒤를 이어 나루히토 왕세자가 5월 1일 재126대 덴노(天皇)로 즉위하면, 일본의 연호도 바뀐다. 일본이 군국주의 길을 버리고 평화와 공존의 길로 나서야 할 적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