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 간판지수인 S&P500이 끝내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했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을 불러일으켰다.
24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71% 내린 2351.10을 기록했다. 지난 9월 역대 최고 마감가에서 19.8%, 장중 최고가에서로는 20% 넘게 하락했다. 사실상 약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2009년 3월 이후 지속된 강세장 행진이 끝났다. 월가에서는 자산가격이 전 고점에서 20% 이상 내리면 약세장에 진입했다고 본다.
마켓워치는 S&P500지수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1% 넘게 하락한 건 유례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증시 전체로도 '산타랠리'가 흔한 12월에 이처럼 급락장이 연출된 건 이례적이다. 주요 지수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12월에 맞먹는 낙폭을 기록 중이다. S&P500지수와 다우지수는 이달 들어 각각 15%가량 떨어졌다.
4분기 들어 시장 불안이 고조된 건 세계적인 경기둔화 우려 탓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0월 낸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한 게 직격탄이 됐다.
주목할 건 IMF가 성장둔화의 배경으로 무역전쟁,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목했다는 점이다. 감세, 재정지출 확대를 비롯한 친성장 정책으로 뉴욕증시의 랠리를 주도한 그가 시장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한 것이다.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단행한 금리인상보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폐쇄), 제롬 파월 연준 의장 해임설 등이 요며칠 시장에 더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은 '트럼프 리스크'의 파괴력을 잘 보여준다.
시장에서는 이날도 트럼프 리스크가 악재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비용이 예산안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셧다운 장기화 우려를 자아냈다. 그는 또 "우리 경제의 유일한 문제는 연준"이라며 연준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고조시켰다. 트럼프의 연이은 연준 비판은 지난주 파월 의장 해임설로 번져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서툰 대응도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는 전날 본인 트위터에 올린 성명을 통해 미국 6대 은행 최고경영자(CEO)들과 한 전화통화에서 유동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월요일인 이날에는 연준과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금융당국이 참여하는 금융시장 관련 대통령 실무그룹을 소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투매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지만, 므누신의 트위터에는 "최악을 준비 중인 거냐?"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일련의 움직임에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1987년 뉴욕증시 폭락사태를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레그 부틀 BNP파리바 미국 증시·파생전략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시장이 이미 경기주기에 대해 우려할 때는 점증하는 정치 불확실성을 소화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불안이 클 때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시장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증시 약세장(S&P500지수 기준)이 평균 13개월 지속되며 30.4%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약세장에서 회복되는 데는 평균 21.9개월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산타랠리가 아예 물 건너간 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타는 크리스마스 이후에도 얼마든지 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마켓워치 칼럼니스트인 마크 헐버트는 다우지수가 만들어진 1896년 이후 크리스마스에서 새해 첫 두 거래일 사이에 지수가 오른 경우가 76%, 상승폭은 평균 1.5%로 다른 때보다 월등히 높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