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 교체 논란을 빚은 가계동향조사는 아직도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내년부터 표본을 바꿔 소득과 지출을 합치는 통합조사로 변경한다지만, 이 계획도 국회 예산안 심의에 발목이 잡혔다. 오히려 통합조사는 고소득층의 소득 포착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심화된 소득양극화 현실을 반영할 수도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 3년차에는 그 차이를 공표할 생각이 없다는 게 통계청의 생각이다. 현 가계동향조사와 통합조사간 추세 등을 보완하려는 이유라지만, 통계 독립성과 신뢰도에 여전히 흠집은 남아있는 상태다.
◆'누더기 통계'로 신뢰 잃어가는 통계청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를 내보이기 위해 당초 통계 방식을 변경하려던 것을 유지한 통계방식이 오히려 문 재인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원래 통계청은 올해부터 국세청 자료를 활용한 연간 단위의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으로 가계동향조사 소득 부문을 대체할 계획이었다. 이에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가계동향조사의 소득부문 폐지를 막은 게 여권이다.
그러나 현재 방식의 가계동향조사(소득)에 표본 오차 논란이 일면서 통계청은 통계조사 개편작업에 나섰다. 올해 분기별 소득조사의 표본을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확대하면서 소득 분배 지표가 급격히 악화된 상황인데, 이 과정에서 표본 설계의 적합성 여부가 논란이 됐다. 같은 시기 통계청장이 교체되면서 통계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들끓기도 했다.
한 통계청 전직 전문가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통계 조사 정책이 바뀐 것은 사실인데, 이렇다보니 통계청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된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해외의 경우, 통계기관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있고 통계표본 변화가 최근처럼 급격하게 바뀔 경우, 통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역시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홀로 기재위 예산 통과 안된 통계조사 예산
통계청이 내년부터 가계통향조사의 소득과 지출부문을 합친 통합조사를 계획했지만, 국회의 예산 심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국회는 지난 13일 기획재정위원회 예결소위를 통해 25조원 가량의 예산 중 129억원에 달하는 통계청 증액 예산은 심의되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이 이날 안건 심사에서 가계동향조사 개편 예산 삭감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조사에 대한 폐지 결정을 급작스럽게 바꿨을 뿐더러 현행 조사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연간 가계지출 조사가 진행되는 것에 소득도 연간을 하게 되면 예산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에 통계청은 시의성 측면에서 소득과 지출에 대한 정책 입안에 필요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통합조사의 근거로 주장한다. 또 금융당국이 금리 인상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시그널을 주려면 가계의 체력과 종합적인 재무건전성을 바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통계청의 논리다.
박상연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가계의 소득과 지출을 연간 조사로 통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이에 통합조사를 위해 129억원을 더 달라고 한 것인데, 그런 비용부담을 감수하더라도 통계를 만들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통합조사로 변경할 경우, 현재 조사에서 반영되지 않은 고소득계층의 소득이 추가로 포착돼 소득양극화 정도가 심화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 역시 같은 시점의 표본을 통합조사에 대입한다는 가정에서 균등화 처분간으소득 5분위 배율이 5.52배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렇다보니 내년 1년간은 통합조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고 내후년부터 발표한다는 게 통계청의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소득양극화의 차이가 확연히 달라질 조사결과를 두고 1년간 묵혀놓는 것 역시 논란만 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민간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소득 양극화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통해 가장 먼저 해결하려는 소득주도성장론의 기초"라며 "그러나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상황에 대해 현실을 충분히 인정하고 개선점을 찾으려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게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