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때만 해도 인공지능(AI)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첨단기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우리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보험업권 사례만 보더라도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는 올해 상반기 반복 업무를 로봇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로보틱스 프로세스 자동화(RPA)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전체 업무처리 속도가 평균 51%나 향상됐다. AI 기반의 로보어드바이저가 펀드매니저 대신 돈을 굴려주거나, 간단한 상담을 대신하는 챗봇 시스템은 이미 여러 보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남의 일 보듯 할 수 없다. 보험연구원은 10년 뒤인 2028년에는 AI 설계사가 기존 설계사를 대체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40만명에 이르는 설계사가 10년 안에 모두 직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다.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 변화가 일자리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16세기 영국에서 모직산업의 발전으로 농경지가 양 목축지로 대체돼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 '인클로저 운동'도 이와 유사하다. 당시 토머스 모어는 저서 '유토피아'를 통해 "착하고 순한 양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다"고 시대상을 비판했다.
이 같은 인클로저 현상은 산업이 발전할수록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간의 일자리를 위해 AI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글로벌 주요국이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질주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손을 놨다가는 국제경쟁력을 잃고 다른 일자리마저 사라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러나 현대판 인클로저 현상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노동과 교육 시스템을 미리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기술 발전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만큼 한 발짝 먼저 대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16세기 농경지에서 쫓겨난 영국의 소작농들은 도시의 노동자로 탈바꿈해 영국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됐다. 영국의 인클로저 현상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듯이 AI가 초래한 보험업계, 아니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고용불안 역시 결코 개인만의 문제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