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5일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대규모 완화 정책은 일본에서 더 이상 가장 적절한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은행의 다음 단계가 통화 긴축임을 가리키는 지금껏 가장 뚜렷한 신호라고 풀이했다.
구로다 총재는 5일 나고야에서 열린 금융경제간담회에서 이 같이 말하면서 “강력한 통화부양책의 긍정적인 효과과 부정적 효과를 균형있는 태도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본은행의 이 같은 정책 미세조정은 통화부양책을 부작용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이날 구로다 총재는 "최근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성급히 따라갈 필요가 없다"면서 근시일 내 현행 기준금리(-0.1%)의 인상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는 “상당 기간에 걸쳐” 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계 주요 경제국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미국 경제 호황을 바탕으로 금리인상 속도를 높이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말로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한 상태다. 일본은행의 정책 변화에 시장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일본의 본격적인 통화정책 변화는 당분간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은행이 목표로 정한 2% 인플레 달성이 요원한만큼 섣부른 긴축 전환 시 어렵게 진입한 경제 회복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9월 일본의 근원 인플레(식료품과 에너지 제외)는 전년비 0.4% 상승에 그쳤다. 또한 일본은행은 10월 정례회의에서 내년 3월까지인 2018/19 회계연도 근원 인플레 전망치를 종전의 1.1%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2019/20 회계연도 전망치도 1.5%에서 1.4%로 내렸다.
또한 최근 일본 지방은행이 보유한 국채 가운데 장기채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 시 채권 가격이 떨어져 커다란 금융 리스크가 초래될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5일 지적했다. 구로다 총재도 이 점을 인정했다. 그는 5일 “계속된 통화부양책으로 금융기관들의 수익이 점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이러한 리스크는 크지 않다고 판단하지만 일본은행은 필요한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필요시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연기됐던 소비세 인상이 내년 10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일본은행으로선 부담이다. 소비세가 현행 8%에서 10%로 인상될 경우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14년 4월 소비세가 5%에서 8%로 높아졌을 때 2015년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은 –6.8%까지 추락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