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경험도 쌓고 시험 삼아 테스트 보러 다녀오려고요.”
이정은6(22)이 지난달 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 출전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남긴 말이다. 이게 웬걸. ‘그냥 본 테스트’에서 덜컥 수석 합격증을 받았다. 어린 시절에는 감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LPGA 투어 풀시드 진출권을 손에 넣었다. ‘미국 진출 한 번 해볼까?’ 이정은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안에서 통한 실력이 밖에서도 통했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4승을 수확하며 6관왕에 오른 이정은은 올해 해외 무대를 노크했다. 한·미·일 투어를 돌며 시야를 넓힌 이정은은 세계랭킹 19위 자격으로 이번 Q 시리즈에 출전했다.
Q 시리즈는 LPGA 투어 진출을 위한 수능시험 같은 등용문이다. 올해부터 변별력과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해 종전 5라운드로 치러지던 퀄리파잉 스쿨을 2주에 걸쳐 8라운드 144홀로 늘려 진행했다. 실력과 체력이 모두 뒷받침돼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지옥의 레이스’였다. 이정은은 7라운드까지 선두에 2타 뒤진 2위였으나 마지막 8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정은은 8라운드 내내 단 한 번도 오버파(70-70-70-72-71-68-67-70)를 기록하지 않으며 탄탄한 실력을 입증했다.
내년 LPGA 투어 카드를 얻은 이정은은 “수석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이렇게 1등으로 통과하게 돼 얼떨떨하다”며 “시드전인데도 그린 스피드가 굉장히 빨랐고, 전체적으로 코스가 좁고 어려워서 티샷을 포함해 모든 샷에 집중해서 경기해야 했다. 2주 동안 8라운드를 치르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만 이정은은 아직 미국 진출을 결정하지 않았다. 이정은은 “미국 진출을 확정하고 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서 가족과 이야기하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정은이 미국 진출을 망설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이정은은 ‘효녀 골퍼’로 유명하다. 자신이 네 살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와 어려운 형편에도 뒷바라지를 해주신 어머니를 두고 멀리 타국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또 한국 무대를 평정했더라도 언어가 다른 낯선 환경과 싸워야 할 미국에서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이정은의 미국행에 무게가 쏠리는 이유는 그의 꿈 때문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하고 싶다는 이정은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더 큰 무대로 나가야 유리하다. LPGA 투어는 세계랭킹 포인트가 더 높다. 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진 부모님도 딸의 미국 진출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이정은이 미국 무대에 진출한다면 ‘슈퍼 루키’로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또 한 명의 한국인 대형 신인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김세영(2015년), 전인지(2016년), 박성현(2017년), 고진영(2018년) 등 4년 연속 LPGA 투어 신인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금의환향을 앞둔 이정은은 오는 9일 경기도 여주시 페럼 클럽에서 열리는 KLPGA 투어 시즌 최종전 ADT캡스 챔피언십(총상금 6억원)에 출전할 계획이다. 현재 KLPGA 투어 상금 1위(9억5305만원)와 평균타수 1위(69.725타)를 기록 중인 이정은은 이 부문 2연패와 함께 사상 첫 2년 연속 시즌 상금 10억원 달성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