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둔화가 심상치 않다. 하반기에 불어닥친 글로벌 증시 폭락은 내년 세계경제가 각종 악재에 신음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반영된 신호탄이다.
내년 세계경제는 살얼음판이다. 곳곳에 변수가 상존한다. 그동안 위태롭던 변수들이 내년에 폭발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다. 최대한 위험요소를 줄이고자 ‘자국우선주의’가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최대 변수로 꼽았다. 전체적인 내년 세계경제가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IMF는 지난달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최근 감세법을 통과시키는 등 건전한 경제 모멘텀을 갖고 있지만, 내년 성장률은 올해 2.9%보다 낮은 2.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성장둔화 배경에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핵심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성장률 0.2% 포인트(p) 하락이 중국의 영향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역시 안심할 수 없다. 중국 성장률은 올해 6.6%로 전망되는데, 내년에는 6.2%에 머물 것으로 IMF는 예상했다. 중국의 성장률도 미국과의 분쟁에 따른 영향으로 앞서의 전망치보다 0.2%p 낮게 잡은 것이다.
앞서 지난달 2일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내년 세계경제가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라가르드 총재는 “6개월 전에는 수평선 위의 ‘위기의 구름’을 지적했지만, 오늘 현재 그런 위기의 일부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며 “글로벌 경제기상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국가가 ‘번영의 약속’을 달성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핵심 이슈는 레토릭이 실질적인 무역장벽이라는 새로운 현실로 변화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단순히 무역 자체뿐 아니라, 투자와 생산을 해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하반기 글로벌 경제는 경색국면에 접어들었다. 높은 금리와 미·중 무역전쟁은 예상보다 빠르게 일부 신흥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IMF는 내년에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은 최대 1000억 달러(약 111조15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 사이클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세계증시는 내년 경제 기상도가 녹록지 않음을 직감하고 있다. 지난달 세계증시는 2012년 유럽 재정위기 후 ‘최악의 달’로 마감했다. 이달에도 이런 흐름이 회복되리라는 확신이 없다.
지난달 미국을 비롯해 △유럽 △홍콩 △한국 △중국 등 모든 증시가 하향곡선을 그렸다. 한국 코스피는 지난달 13.37% 급락해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23.13%) 이후 최대 낙폭을 갈아치웠다. 기술주 비중이 큰 대만 자취안(加權)지수 역시 10.94% 하락해 10년 만의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통상적으로 대부분 국가들이 상반기 금리‧환율 조정에 나선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계증시가 회복할 힘을 축적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증권가는 경제변수에 민감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내년 세계경제에 가장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집단도 증권가다. 내년이 증시 위기라고 진단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리상승 △경기둔화 우려 △무역전쟁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 증시 악재가 단기간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부분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가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펀드매니저들은 더 냉정하다. 펀드매니저 85%가 세계경제가 경기확장 사이클의 말기(late cycle)를 지나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응답자 가운데 38%가 향후 12개월 동안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부분도 주목할 대목이다. 내년부터 경제가 꺾이는 시점이라고 진단한 셈이다. 임박한 하강기 도래를 점치는 이 같은 비율은 2007년 12월 같은 조사에서 집계된 종전 최고치보다 무려 11%p나 높은 수치다.
자산운용사 펜 뮤추얼의 마크 헤펀스톨 최고 투자책임자는 “올해 초에는 세계가 똑같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됐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세계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아주 빨리 자취를 감춘 형국”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