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상화폐공개(ICO)를 규제한 지 1년. 긴 침묵을 깨고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법 없이 방치돼 있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상화폐)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정치권에서 ICO 허용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장에 온도차가 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16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국정감사 기간을 맞아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등 주요 상임위는 블록체인을 주요 쟁점으로 잡고 사전에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정무위는 ICO 규제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를, 과방위는 블록체인 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담당하는 위원회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한다고 선언한 이후 관련 법안 없이 사실상 '무법 지대'에 놓인 암호화폐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취지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정부의 부정적 시각과 이미지 악화로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암호화폐·ICO 논의 시작 조짐
국회에서는 정무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친(親)블록체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무위에서 공청회가 열린 이후 사실상 중단된 암호화폐·ICO와 관련한 국회 논의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민병두 정무위원장은 정부가 ICO 정책 금지에서 허용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11월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혹은 특위 형태로 ICO 법안 공청회 개최를 예고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근 ICO 합법화를 다룬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거래소를 합법화하고 금융위 소관 '발행심사위원회'를 설립, 신규 코인이나 토큰 발행 승인을 유도하는 내용이 주요골자다.
정부도 11월 중 ICO 관련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은 9월 블록체인 기업을 대상으로 ICO 실태 점검에 나섰으며, 조사 결과는 10월 말께 나온다.
◆'장밋빛 미래' 장담 어려워
그러나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오히려 정부 발표 이후 시장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최 위원장은 지난 11일 국감에서 "ICO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과거 겪었던 피해는 명백하고 심각했다"며 "해외도 ICO에 대해 보수적이거나 금지 정책인 나라가 많다"고 말했다.
ICO를 제도화하더라도 미국처럼 증권거래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사실상 금지'하는 방향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정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하는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이 혈관이면 암호화폐는 피'라고 비유할 정도로, 암호화폐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블록체인 전문가가 부재한 탓에 블록체인 활성화 방안은커녕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상황이다. 최 위원장 역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꼭 같이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블록체인업계, 불확실성에 '몸살'
1년간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허송세월을 보낸 블록체인업체들은 지난달 금융당국의 실태조사가 거래소의 처벌을 위한 것인지, 제도 구축을 위한 것인지조차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그저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 공백'을 메워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사업 허용 범위를 줄이더라도 규제만 만들어주면 가이드라인 내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음달 발표될 정부 정책이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업계는 한국 블록체인산업이 '회생 불가' 상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우리나라의 블록체인·암호화폐 기업 100여곳이 해외로 나갔고, 150여곳은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달이 지나면 사실상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려는 업체의 움직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암호화폐업계 관계자는 "지금 블록체인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엄격한 규제가 아니라 규제 자체가 없는 불확실성"이라며 "한국이 갈라파고스로 전락한 상황에서 정부의 모호한 입장이 계속된다면 이미 꺾인 블록체인산업 동력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상태로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