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탓에 욕먹던 전인지 ‘울음’ 터진 날

2018-10-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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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에 흔들리는 내가 더 미웠다”

IQ 137 수학영재 출신의 ‘60m 확률 골프’ 적중

25개월 만에 LPGA 투어 통산 3승 수확

2년 1개월 만에 LPGA 투어 우승을 차지한 전인지가 눈물을 머금은 채 팬들을 바라보며 골프공에 사인을 하고 있다. 사진=펜타 프레스 연합뉴스 제공]


14일 인천 스카이72 골프클럽 오션코스(파72) 17번 홀. 전인지(25)는 수많은 갤러리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우승 문턱의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일일이 손을 맞댔다. 지난 2년간 준우승만 여섯 차례. 그토록 기다리던 우승 기회를 잡고 집중해야 할 마지막 두 홀이었으나 마음이 가는대로 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전인지의 사심 없는 행동을 두고 두 가지 시선이 엇갈린다.
하나, 팬 서비스가 좋은 참 예의바른 선수다. 그는 캐디에게 클럽을 건넬 때도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과 눈인사를 꼭 하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우승을 못해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준우승도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다. 평소 기부를 많이 하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둘, 참 속도 없는 선수다. 우승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팬들과 인사하기 더 바쁘다. 준우승을 하고도 우아한 척 이미지 관리를 하느라 미소만 짓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곤 했다. 가식적인 모습을 근거로 사실과 다른 사생활을 들추는 루머에도 시달렸다.

엇갈린 시선에도 미소만 짓던 그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2016년 9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뒤 2년 1개월 만에 우승을 이룬 순간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악성 댓글과 비난의 목소리를 씻어내듯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의 첫 마디는 “지난 힘들었던 시간이 떠올라서…”였다.

전인지는 이날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4위로 최종 4라운드에 나서 6타를 줄이는 맹타로 역전 우승 드라마를 썼다.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 2위 찰리 헐(잉글랜드)을 3타 차로 따돌린 넉넉한 우승이었다. 마지막 우승 이후 무려 44번째 대회였다.
 

[수많은 갤러리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전인지의 모습.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전인지는 2016년 미국 데뷔 시즌부터 화려했다. 한국, 미국, 일본을 돌며 메이저 대회 5연승을 휩쓸어 ‘메이저 퀸’ 별명을 얻었고, 38년 만에 LPGA 신인상과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을 동시 수상했다. 수려한 외모와 우아한 스윙으로 큰 인기도 얻었다.

이후 우승이 나오지 않자 넘치게 받았던 엄청난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됐다. 성적이 나오지 않자 최악의 시간이 찾아왔다. 주변에서 들리는 모든 이야기들이 상처가 돼 가슴에 깊게 박혔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평소 해보고 싶었던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짧게 잘랐더니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부모님이 강제로 잘랐다’는 루머까지 나왔다. 마음고생으로 시즌 초보다 체중이 8kg이나 빠진 것을 두고도 ‘골프에 전념하지 않고 남자친구 때문에 살을 뺐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전인지는 이번 우승과 함께 그동안 담아뒀던 속내를 털어놨다. “힘든 시간이 어느 순간 갑자기 온 게 아니다. 조금씩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나 자신을 스스로 자꾸 바닥으로 밀어 넣었다. 예민해졌다. 가족과 매니지먼트 등 주변 사람들을 정말 힘들게 했다.” 이번 우승은 자신을 끝까지 믿고 응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조울증까지 찾아왔다. ‘괜찮아’라고 속으로 외치던 자신감마저 사라져 버렸다. 악성 댓글을 떨쳐내고 극복할 힘도 없었다. “악플(악성 댓글)이 힘들었던 마음과 아예 관계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다.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참기 힘든 속상한 말을 듣고 아무리 반응하지 않으려고 해도 가슴에 콕 박혀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라. 제가 그 말에 반응한다는 게 더 한심하고 미웠다. 너무 무서웠고, 나라는 사람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선플’(착한 댓글)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아닌 모습을 연기하고 싶지 않다. 진실한 모습으로 계속 투어 생활을 하고 싶다. 앞장서서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 상대 선수를 깎아내리기보다 같이 응원하는 따뜻한 환경이면 얼마나 좋을까.” 절망의 시간을 뚫고 ‘나’를 되찾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에게 힘이 된 건 병상에 계신 할머니의 한 마디였다. 그는 자신의 생일(8월 10일)에 할머니의 축하를 받고 싶어서 중환자실로 병문안을 갔다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던 할머니가 헤어지기 직전 손을 꼭 잡고 말씀해주신 “건강해야 해”라는 한 마디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그는 “할머니께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기회를 만들지 못해 힘들었다”며 “이번에 그 기회가 생겨 기쁘다”고 웃었다.

마음고생을 털어낸 전인지의 이번 대회 우승은 ‘전인지 스타일’로 일군 결과였다. IQ 137의 수학영재 출신인 일명 전인지표 ‘확률 골프’다. 욕심을 버린 철저한 계산으로 가장 자신 있는 60m를 남기는 전략이다. 특히 지난주 열린 국가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4전 전승을 거두며 한국의 우승을 이끈 덕에 평정심이 중요한 ‘확률 골프’도 부활할 수 있었다.

전인지는 이번 대회 기간 내내 마음껏 갤러리와 눈을 맞추고 손바닥을 맞대며 소통했다. 그는 “많은 팬분들 앞에서 응원을 받으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복 받은 사람인지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고 말했다. 미소 탓에 욕먹던 그가 눈물을 애써 참으며 내비친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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